사상 초유의 저금리 시대다.

콜금리는 한달째 4%대.

중소기업 대출금리도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개인대출금리도 부분적이지만 10% 이내로 들어서고 있다.

국내외 금리차도 역전됐다.

해외에서 빌려오는 돈보다 국내에서 차입하는 돈이 더 싸졌다.

초저금리는 증시를 벌겋게 달구고 있다.

주가는 마침내 800선을 넘보고 있다.

소비도 부유층에선 이미 IMF를 극복한 느낌이다.

중산층에서도 소비회복세가 곧 나타날 것이다.

산업생산도 두자리수 증가율을 나타낼 만큼 호전됐다.

그러나 경기회복의 선순환은 아직 여기서 멈추고 있다.

설비투자는 동면에서 깨나지 않은 상태다.

선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금융호황에 그치는 ''카지노
자본주의''일 뿐인가.

전자가 초저금리의 빛이라면 후자는 그늘이다.

''초저금리 고주가'' 시대의 경제를 긴급 점검한다.

정부는 낙관적이다.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은 28일 청와대 주례보고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기회복기에는 금융이 먼저 가고 실물이 뒤쫓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빛을 보는 측은 "초저금리->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상승->소비심리확산->
내수중심의 투자회복->경기회복"의 선순환 시나리오를 그린다.

정부가 "아직 과열이 아니다" "시도했던데로 되고 있다"는 식으로 낙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민간연구기관들은 한술 더 떠서 "과열은 커녕 부양여력이 더 있다"고
주장한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공장가동률이 70%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과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넌센스"라며 "지금은 추가 성장이
필요한 시기"라고 잘라 말했다.

최흥식 금융연구원 부원장도 "현재 거품이 낀 것은 아니다"면서 "설사
거품이 생기더라도 중앙은행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그늘에 주목하는 측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초저금리->자산가격상승->인플레심리 확산및 수입확대->환율불안.금리
상승->경제체질 약화->경기침체"의 악순환을 걱정한다.

신후식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경제는 초저금리라는 날개를 달고
경제속도를 넘어 비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증시와 부동산에는 이미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선 "설사 과열시비가 시기상조라고 하더라도 앞으로가 문제"라고
경고한다.

김창진 고려대 교수는 "한국경제의 문제는 일단 거품이 일기 시작하면
최대한 팽창하기 전에 미리 터뜨려주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도 "한국은행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서
중앙은행을 통해 거품을 제거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의문을 표시했다.

재경부 진단대로 선순환을 거듭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정상적인 회복
궤도에서 이탈할 경우 바로잡을 주체가 허약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돈을 풀어 자산가격을 끌어올리고 이를 경기회복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정부의 시나리오를 "무모한 도박"이라고 비판한다.

한국의 경제체질상 인플레만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투자촉진을 기대하고 돈을
푸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공격한다.

최근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같은 관변 이코노미스트들도 "경기가 자칫
오버슈트(overshoot)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며 신중론쪽에 다가서고
있다.

경기가 부문별로 양극화하고 있다는 점도 과열 못지않게 큰 문제다.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온기가 확산되기는 커녕 윗목이 더 차가워진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덜 가진 사람들의 소외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주가에 대해서도 상반된 시각이 엇갈린다.

유지창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주가는 어차피 기대감의 반영이고 지금
주가가 오르는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기대수준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금리가 하향 안정화돼 있는데다 기업구조조정으로 상장기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상장사들의 순이익이 9조4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
(동원증권)도 나왔다.

정부는 한발 더나아가 국내 상장사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2배 정도로
미국 등에 비하면 훨씬 낮다는 점도 강조한다.

주가가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또 조정국면을 맞더라도 경제여건상 소프트랜딩(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반해 신중론자들은 현재의 장세가 기업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전형적인 금융장세라고 보고 있다.

이들의 시각에는 올해 상장사들의 수익전망이 좋게 나오는 것도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아서가 아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특별이익과 저금리에 "무임승차"한 호전일
뿐이다.

외부변수를 걱정하는 경고도 나온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등의 충격이 발생하면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빠져
나가 증시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물부문에 대한 전망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부동산의 경우 일부 회복기미가 있지만 투기의 우려는 얼토당토
않다는게 정부의 시각이다.

주택은행 조사결과 이달들어 아파트 가격이 제자리 걸음을 한 사실을 그
증거로 들고 있다.

반대로 투기를 걱정하는 측은 "증시 다음은 부동산"이라는 과거의 경험을
강조한다.

주가가 조정국면에 들어서면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시장에 몰려 투기광풍이
재현될 가능성이 짙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경제는 금년 하반기에 갈림길을 맞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지금의 자산경기가 소비경기를 거쳐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으로 발전할지
거품재현으로 빗나갈지 향후 3-4개월안에 판가름난다는 얘기다.

심상달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선순환으로 2가지 경우를
상정해 놓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만약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금융시장이 경색될 경우
추가금리인하는 불가피하다.

반면 경기회복이 너무 빨라져 물가상승률이 2%대를 웃돌 경우엔 금리를
올려 거품을 미리 빼야 한다는 것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