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고지에서 미끄럼을 타기 시작한 주가가 기력을 차리지 못한다.

한때는 IMF사태 이전의 주가수준인 600고지를 탈환하면서 주식시장이 앞장서
IMF탈출을 외쳤으나 그런 용기와 기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폭락하는 주가가 멈출줄을 모르니 객장에서도 아우성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2%로 낙관했고 재경부는 금리를 안정시키
겠다고 약속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는 표정이다.

이런 주가폭락 사태에 대해 증권전문가들은 "금리는 바닥을 쳤고 수급구조가
무너진데다 불안한 해외요인까지 겹쳤다"는 진단을 내린다.

1월11일 7.15%까지 떨어졌던 금리는 불과 2주일 사이에 1%포인트 이상
올랐다.

대통령이 "수신금리와 여신금리의 격차를 줄이라"고 언명을 내렸지만
금리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증자물량도 러시를 이룬다.

정부는 올해 25조원의 증자를 유도해 상장사의 부채비율을 2백% 아래로
떨어뜨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증시가 지속적으로 활황세를 보이고 정부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다면 기업도
살아나고 투자자도 돈을 버는 선순환의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경제현실이 계산대로 움직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증자물량이 쏟아지니 주식시장 참가자들은 내주머니가 털릴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먼저 한다.

금리 문제도 정부가 떨어뜨리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행동으로 보이는
것은 별로 없다.

시장참가자가 정책당국자를 믿지 않으면 정책목표는 빗나갈 수 밖에 없다.

증시가 다시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지면 유상증자를 해봐야 주식을 인수하는
이가 없게 된다.

증자로 기업의 부채비율을 낮추겠다는 정책목표는 결국 공염불이 되고 만다.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미국의 증시과열을 식히려
수시로 "주가가 폭락할지 모른다"고 경고를 해댄다.

그린스펀이 결코 주가폭락을 원하지 않을 뿐더러 시장참가자도 주가폭락이란
반응을 보이는 법이 없다.

금융시장 참가자와 두터운 신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의 주식.채권시장 움직임을 보면 시장참가자와 정책당국자 사이의
신뢰가 깨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뢰가 복원되지 않는 한 정책당국자와 시장참가자 사이의 숨바꼭질, 그로
인한 시행착오는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 허정구 증권부 기자 huhu@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