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세기의 중남미는 유럽 특히 에스파니아인들이 이 지역을
마음대로 요리한 시기였다.

에스파니아인은 몇백명의 군대와 단 몇문의 대포만으로 한때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아즈텍이나 잉카같은 나라를 단숨에 멸망시켰다.

에스파니아는 중남미 경영에 필요한 노예의 확보는 물론 황금과 은 등
엄청난 부를 손에 넣었고 이곳에서 실어온 대규모의 은때문에 유럽에서는
은의 가격혁명이 일어날 정도였다.

지나친 비약이기는 하지만 요즘 우리 증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쳐다보면서 16세기 초반 중남미를 마음대로
요리했던 에스파니아인들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외국인들의 움직임이 주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들의 동향분석이
장세전망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어 버린 것이 요즘의 증시현실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사들이면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고 이들의 매수강도가
축소되는 날은 주가상승폭도 줄어드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외국인들의 주식 매매동향을 보면 이들이 주가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수긍할만도 하다.

금년들어 지난주말까지 외국인들은 모두 1조2천5백1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고 3천5백17억원어치를 팔았다.

이 기간중 전체 주식매매량 10조3천9백68억원의 12.0%를 사들여 증시
최대의 매수집단을 부상했다.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또 이들을 따라 주식을 사거나
파는 추종세력역시 만만찮다는 우리 증시의 현실은 외국인의 영향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시장분위기로 볼 때 이처럼 외국인들이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같다.

물론 4조원 수준에 달하는 고객예탁금이나 설을 앞둔 기업 부도사태
우려 등 여타 호.악재들도 거론될 수있겠지만 당분간은 종속변수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외국인들 앞에서는 여타 재료들은 대부분 빛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요즘의 증시분위기인 것이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계속 사들이면 주가 오름세가 이어지고 주가의
단기상투역시 외국인들의 매도반전과 시기를 같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이같은 외국인들의 매매동향은 곧 열릴 뉴욕 외채협상과 원.달러
환율 추이의 영향을 많이 받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향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논리는 주식시장에
가장 걸맞는 얘기이다.

하지만 우리 증시가 완전히 외국인들 손에서 놀아나는 현실이 결코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요즘 유입되고 있는 외국인 자금중에는 단기차익만을 노리는
헤지펀드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같다는 것이 증권계의 일반적인
분석이고 보면 주가상승에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계속하겠다면 좋든싫든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증권시장의 현실이다.

우리 증시의 한계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증권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