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및 투자신탁업계도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의 유탄을 맞으며
파란많은 한해의 막을 내리고 있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종합주가지수가 600선을 바닥으로
다시금 대세상승으로 치닫기를 기원하는 염원속에 업계도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랬던 것이 주가 800선을 넘지 못하고 되밀리고 되밀리면서 결국
300대로 추락하자 2개 증권사와 1개 투신사가 자초당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업계주변은 악재의 연속이었다.

한보그룹과 기아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연쇄부도가 투자심리를
잠재웠고 태국 등 동남아에서 불어온 외환위기라는 태풍의 눈이 우리나라를
그대로 강타했다.

달러당 원화환율은 2천원선 가까이 치솟기도 했고 실세금리는 연 30%를
넘나들었다.

업계의 "희망"도 시간이 갈수록 "이제는 제발 멈춰달라"는 "애원"으로
바뀌었다.

특히 12월 한달동안은 증권사나 투신사 사장들도 밤낮없이 회사자금
사정을 챙겨야 하기는 여느 제조업체나 진배없었다.

12월초에 두차례에 걸쳐 14개 종합금융회사들이 무더기로 영업정지를
맞으면서 이들 종금사에 넣었던 자금이 꽁꽁 묶여버린 탓이다.

급기야 나날이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자금을 막지 못한 일부 회사는
잇따라 부도로 내몰리는 사태를 빚고야 말았다.

지난 11월 일본의 증권업계 8위인 산요증권과 4위인 야마이치증권이
파산할 때만 해도 남의 일인양 여겨졌던 것이 채 한달도 안되어 우리의
현실로 다가왔다.

12월5일 약정기준 업계8위의 대형사를 자랑하던 고려증권의 부도와
업무정지에 이어 일주일만인 12일엔 업계4위인 동서증권마저 무너져
업무중지를 선언했다.

지난 60년대초반 증권파동때 군소증권사들이 정리된지 30여년만에 맞는
증권사 부도다.

고객보호를 위해 예탁금인출 등의 업무는 곧바로 재개됐지만
투자자들에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쌓여 있던 증권투자자보호기금이 고려증권의 일로 고갈돼
동서증권 고객들은 예탁금을 찾는데 2주일이상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들 증권사의 대주주들은 회사를 살려 보겠다고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지만 법의 심판은 냉엄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가 지난26일 동서증권과 고려증권에
대해 법정관리 기각결정을 내렸다.

"금융기관의 영업은 신용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신뢰성을 잃은
금융기관은 법정관리를 거치더라도 회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결국 회사측에서 확실한 경영개선방안을 내놓거나 이들 회사를
인수하려는 제3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청산절차를 밟아야 할 운명이다.

단기자금에 쫓기기는 투신사도 마찬가지였다.

제도적으로 고객재산은 보호된다는 점에서 예금자보호장치에서 제외되고
영업정지된 종금사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환매에 시달리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환매자금을 마련하려면 보유유가증권을 팔아야 하지만 주가와 채권값이
뚝 떨어진 상황이어서 한마디로 비상이 걸렸다.

대통령선거의 열기로 가득했던 지난 18일 인천에 본사를 둔 신세기투신은
끝내 한달간 업무정지를 당하고 말았다.

국내 투신사상 첫 업무정지였다.

고객들이 맡긴 신탁재산은 그대로 국내최대의 수탁고를 자랑하는
한국투자신탁으로 인계됐다.

신세기투신의 신탁재산은 수탁기관(보관기관)인 경기은행 등에 보관된
상태.

증권당국과 한국투신 관계자들이 신탁재산 내용에 대한 충분한
실사작업을 벌이고 전산시스템을 옮겨야 입출금업무가 재개된다.

한국투신측에선 빨라야 새해 1월중순에야 입출금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어쨌든 고객들은 숙제를 안고서 새해를 맞게 됐다.

증권사 부도는 자회사인 동서투자신탁운용과 고려투자신탁운용까지
골병들게 만들었다.

기존의 8개투신외에 운용만 전담하는 투신운용회사가 현재 23개에
달하지만 자체판매망이 없이 증권사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판매회사가 부도나면 이들은 치명타를 맞을 수 밖에 없다.

이같은 부도사태와는 별도로 업계는 "생존경영"에 열중했다.

증권사들은 가라앉는 주가앞에서 회사재산으로 사들인 상품주식규모를
줄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기업들의 연쇄부도로 지급보증에 대한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증권사
사장들의 어깨를 더욱 짓눌렀다.

특히 하반기엔 태국등 동남아 통화위기가 본격화되자 이들지역에
투자했던 일부 증권사나 투신사들이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해외에서의 편법거래에 의한 손실이 두고두고 경영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얘기가 이어지는 회사도 있었다.

대형투신사들은 자금운용을 옥죄는 요인이었던 고유부문의
유가증권평가손을 결산에 반영하는 용단을 내렸다.

평가손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것을 장부가현실화로 회사재산의
운용에 숨통을 트자는 것이다.

국민투자신탁증권이 지난 2월과 3월 두번에 걸쳐 평가손을 처리해
상반기중엔 월별회계로는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도 9월1일 평가손을 전액 결산에 반영했다.

이같은 경영혁신노력도 하반기들어 속락하는 주가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아무튼 연말연시도 잊은 증권사와 투신사 사장들에겐 지난 한해가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원년"으로 받아들여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손희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