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외국인 공포증에 온몸을 떨고 외국인 매물공세는 3차에 걸친 증시
안정책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을 떠나기로 작심한 그들의 발길은 쉽게 돌아설 것같지 않다.

상상이상의 주가폭락사태를 몰고온 외국인 투자자,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투자자금은 어떤 돈이며 어떤 방식으로 주식을 사고 파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떠나게 하는지,그들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국인의 실체를 해부해 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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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매도가 최대치를 기록한 30일 오전.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 나온 강헌구 ING베어링 이사는 쏟아지는 외국인
매도주문에 아연실색했다.

"하한가도 좋으니 무조건 팔아달라"며 내놓은 주문이 무려 3백억여원.

평소의 두배에 가까운 물량을 처리하느라 주식시장이 끝날 때까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매물이 한전과 삼성전자 포항제철 SK텔레콤 등 그동안 외국인들이 선호했던
종목이어서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같은시간 송동근 HG아시아증권 이사는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외국인 매물이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하고 지난 29일 한전주를 30만주 가량
순매수했었는데 이날은 "팔자"주문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10월들어 한전을 외국인들이 외면하고 있다.

30일 하룻동안 2백94만주나 순매도한 것을 비롯 10월에만 1천39만주를
처분했다.

순매도 상위 1위다.

이에따라 한전주가는 2만3백원에서 1만4천8백원으로 폭락했다.

5년여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외국인들이 한전주를 샀던 가격대는 2만5천원대.

주당 1만원씩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매각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전 추락의 원인으로는 원.달러환율 급등에 따른 막대한 환차손이 꼽히고
있다.

한꺼풀 벗겨보면 그뿐만이 아니다.

수익전망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 더 부각된다.

"전체 수익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전기료 인상 시기와 폭을 정부규제
로 인해 제대로 추정할 수 없다"(타이거펀드 관계자)는 것이다.

홍콩이나 미국등에서 전기료 인상은 물가나 금리와 연동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한국증시를 떠나면서 매물이 쏟아지고 "외국인공포"는
커져 가고 있다.

10월중 8천8백80억원어치나 내다팔아 종합주가지수를 162.03포인트(25.0%)
나 끌어내렸다.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순매도는 이날까지 1조2천8백24억원으로 늘어났다.

92년 개방이후 지난 7월까지 순매수한 11조3천4백1억원의 11.3%에 해당되는
규모다.

이에따라 외국인 보유비중은 지난 7월 14%선에서 12%선으로 뚝 떨어졌다.

특히 지난 24~28일 4일간은 종합주가지수를 108.78포인트(18.0%)나 끌어
내리며 500선마저 가볍게 무너뜨렸다.

4일만에 100포인트 이상 폭락한 것은 증시개장이래 처음이다.

외국인이 한국주식을 헐값에 처분하고 있는 원인을 곰곰히 따져보면 한국의
장래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올들어 상장기업이 30개 가까이 부도를 내 주가가 반토막, 네토막났다.

원.달러환율도 올들어 13.7%나 올랐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이른 시일안에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외국자본 및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실망감도 이만저만한게 아니다.

그런 차에 홍콩증시가 폭락했다.

라틴아메리카나 동유럽 증시가 올들어 30%이상 상승하는 등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한국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어졌다.

외국인도 천사가 아니라 철저히 이익을 좇는 "투자자"라는 사실을 그동안
잊고 지내 왔는지 모른다.

외국인매도는 두가지 점에서 증시 뿐만 아니라 경제전반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하나는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기관들이 재정경제원의 순매수 "종용"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과 대조적
이다.

그들은 "팔자"로 방향을 잡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목표물량을 내다판다.

종합주가지수가 500선을 깨건 400선을 위협하건 개의치 않는다.

다른 하나는 환율불안의 직접적 요인이라는 점이다.

환차손을 우려해 주식을 팔고 달러로 바꾸면 이는 또다시 환율을 끌어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외국인의 무차별매도.

지난 92년 주식시장이 개방된 뒤 처음 겪는 가장 혹독한 시련이다.

한번 떠나기로 마음 먹은 그들의 발길을 어떻게 돌릴 수 있는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 홍찬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