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폭락 환율급등 금리상승으로 표출되고있는 총체적 금융위기가 기업의
해외자금조달 숨통마저 조이고 있다.

국내금융기관의 신용도 추락으로 은행등을 통한 외화자금차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데 이어 해외에서의 직접자금조달마저 마비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전자는 오는11월 2억달러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할 계획이었다.

64메가D램, 2백56메가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해외자금
조달이 시급했다.

그러나 주가폭락과 환율급등으로 CB발행을 포기해야할 처지에 빠졌다.

발행을 주간할 해외금융기관에서 별로 관심이 없을뿐 아니라 발행조건조차
맞출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LG반도체 유통DR(주식예탁증서)발행도 제대로 될지 불투명하다.

LG상사는 시티은행을 통해 LG반도체 유통DR를 발행, 1억5천만달러를 조달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주가폭락으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DR발행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올해안으로 2억5천만달러 규모의 우선주 유통DR를 발행, 런던거래소에
상장시키겠다는 계획이 성사될수 있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초우량기업인 SK텔레콤은 발행가격조건이 맞지 않아 DR발행을 연기했다.

올해안으로 반드시 상장시키겠다고 다짐했던 한국통신도 정부가 제시한
가격과 해외에서 요구하는 가격에 1만원이상 격차가 벌어져 결국 유통DR
발행이 무산됐다.

(주)대우는 양키본드를 발행하려 했으나 금리조건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삼성전기 데이콤 장기신용은행 보람은행 등도 해외채권발행에서 쓴맛을
봐야 했다.

문제는 이처럼 해외자금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는 기업들이 한결같이 국내의
간판기업들이라는 사실이다.

자체신용만으로 해외시장에서 채권이나 주식을 거뜬히 소화해 냈던 초우량
기업들이 이제는 발행조차 어려워졌다.

이보다 한등급 낮은 기업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현대전자 강성수 국제금융부팀장은 "기업이 적기에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수익이 저하되고 결국 기업실적이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며 "당분간
국내기업의 해외채권발행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주식 또는 채권발행을 통한 국내기업의 해외자금조달은 올들어
극히 저조하다.

주식을 예탁한 증서로 발행되는 해외DR는 올들어 아남산업 주택은행 등
2건 4억달러에 불과하다.

지난해 7건 9억6천만달러, 95년 9건 13억달러가 발행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만하다.

해외CB(전환사채)는 올들어 18건 12억5천6백만달러가 발행됐다.

지난해(37건 14억9천6백만달러)보다는 적은 규모이지만 그래도 DR보다는
형편이 낫다.

주가가 폭락하더라도 확정이율이 보장되는 CB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주가폭락으로 발행가격이 급락, 원하는 만큼의 자금을 조달
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증권거래소 김준헌 과장은 "CB나 DR를 발행하겠다는 회사는 많지만 발행
조건이 급격히 악화돼 많은 기업들이 발행시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해외자금조달에 차질을 빚는 것은 한국경제를 보는
외국인시각이 그만큼 나빠졌기 때문이다.

"외화차입과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정책에 편승해 성장한 기업들이 더이상
세계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보는 외국자본들이 늘어나고 있다"(대우증권
강창희 상무)는 얘기다.

기아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시장교란과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해 한국시장에서 떠나는 외국자본들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주식시장은 외국인매도공세로 연일 대폭락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철폐, 해외시장개방, 산업구조조정 등 전반적인 문제해결없이
금리나 주가 등 각론차원의 접근만으로는 난국을 타개할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현승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