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원(가명)씨는 최근 2천만원의 여유자금이 생겨 어떻게 잘 굴릴 수
있을까 한창 고민중이었다.

마침 주가가 오름세를 타고 있어 솔깃했다.

그래도 2년전에 직접 주식을 샀다가 원금이 반토막난 아픔이 아직도
새롭다.

뭔가 참신한 투자수단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간접투자에 나서기로 하고
투자신탁회사를 찾았다.

안정적인 채권형 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모처럼 주가가 바닥을 치고
오르는 것으로 여겨져 주식형상품에 가입하기로 했다.

사실 주식형상품은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었던 지난 80년대
후반만해도 봇물 터지듯 밀려와 전체수탁고의 50%를 웃돌기도 했지만
지금은 17% 수준으로 떨어졌다 (김영기 대한투신 영업지원부장).

그만큼 원본을 밑도는 상품이 많아 자금이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지금도 주식형 수탁고는 줄고 있지만 이르면 이달중순부터는 증가세로
돌아설 것 (손세명 한국투신 영업추진팀장)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특히 주가가 상승세를 타면서 강남이나 명동권의 개인 "큰손"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식형상품에도 안정형과 성장형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천만원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투신사들이 최근 선보인 벤처기업 투자펀드다.

잘만 하면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구나 벤처기업에 직접투자하는 경우처럼 앞으로 벤처펀드에 대해서도
자금출처조사 면제와 분리과세 등의 혜택이 주어지면 더욱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그래서 일반 주식형보다 벤처펀드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현재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은 벤처펀드 설정을 위해 한창
수익증권을 팔고 있으며 국민투자신탁증권에선 지난해말부터 이미
운용중이다.

국투증권에서 지난해10월 설정한 "콜럼버스1호"의 경우 5월말 기준
17.2%의 연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 5월6일 설정한 "코스닥"은
20여일만에 연 수익률이 1백55%에 달하는 실정이다.

이들 3대 투신은 모두 추가형과 단위형의 벤처펀드를 내놓았다.

"콜럼버스" 같은 추가형은 고객들이 필요할 때마다 입금하고 찾아가는
상품으로 대개 1년정도의 짧은 기간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또 "코스닥" 등의 단위형은 일정기간의 투자금모집기간을 거쳐 펀드를
설정, 운용하게 되며 5년 등 장기투자를 원하는 고객을 겨냥한 상품이다.

한국투신의 경우 추가형과 단위형 모두 신탁재산의 90%까지 주식에
투자하는 "어드벤처주식투자신탁"을 판매중이다.

단위형은 신탁기간 3~10년의 4가지로 의료기기 정보통신 멀티미디어 등
테마별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펀드이름도 테마에 따라 "메디컬어드벤처" "멀티미디어어드벤처" 등으로
구분할 예정이다.

추가형은 내년 5월말까지 1년동안 판매하는 상품으로 오는 23일께
1호를 설정할 예정이다.

가입자와 펀드매니저가 협의해 신탁기간과 투자대상을 선정하는
"맞춤형"으로 운용하며 모집기간중에는 안정적 주식형으로 운용하게 된다.

어드벤처의 목표수익률에 대해선 약관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운용을
맡은 장태연 운용역은 "연간 20% 이상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투는 또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펀드운용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장기투자기금성격의 "벤처기업투자안정조정금" 제도를 도입했다.

환매수수료의 일부를 적립해 3년이상 보유한 투자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는 개념이다.

대한투신은 지난5월29일부터 "벤처주식투자신탁"을 내놓아 판매규모가
이미 50억원을 넘어섰다.

추가형의 경우 설정일로부터 1년이내에 15%의 수익률을 내면 환매수수료
없이 신탁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또 신탁기간 5년인 단위형은 목표수익률을 1년이내 15% (2년이내 20%,
3년이내 30%, 4년이내 40%, 5년이내 60%)로 하여 기간별 목표치를
달성하면 해지하게 된다.

김기환 운용역이 맡아 탄탄한 수익률을 낼 채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대투의 경우엔 벤처기업 전문투자기관인 한국종합기술금융 (KTB)과
업무제휴를 통해 유망기업을 추천받아 투자해나갈 방침이다.

이중에서 상품을 고른뒤 본인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과 도장을 갖고
투신사 영업점에 가면 계좌를 개설할수 있다.

< 손희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