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라는게 문서로 이뤄지는게 아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어서
단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루머단속은 진원지보다는 유통경로에 집중돼 있어 루머가 나오는 것 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지난 1월23일 한보 부도후 루머단속에 나서고 있는 증권감독원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조사총괄국 안에 루머제보용 전화를 상시 가동하고 단속에 걸릴 경우 관련
임직원문책(증권사)이나 형사처벌(일반인)을 내릴 것이라는 엄포가 내려졌음
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잠잠하던 루머가 활개를 치고 있는데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A백화점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루머가 나돌면서 인척관계에 있는
B건설사가 부도위기에 몰렸다.

C그룹의 자금사정이 악화되고 있으며 용산 컴퓨터 유통업체가 연쇄부도에
휘말리며 C컴퓨터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급기야 한보 부도이후 행장이 날아간 은행을 중심으로 부실채권을 늘리지
않기 위해 신용등급이 낮은 30개 기업을 대출금 회수대상으로 삼았다는
"은행리스트"마저 떠돌고 있다.

루머에 휘말린 기업들이 "사실무근"임을 적극 해명하고 나서도 좀처럼
루머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루머단속이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할 뿐이다.

대부분의 루머단속이 윗분들 눈치를 살피는 "일회용" 엄포로 끝났다는
경험칙이 이를 반증한다.

또 루머단속에 걸렸다고 해도 특별히 "손해"볼게 없다는 점도 루머유통의
뱃심을 크게 해준다.

현재 루머단속에 걸릴 경우 <>증권사(임직원)는 고의로 부당이익을 취하기
위해 루머를 생성 유통시켰을 때에 한해 처벌되며 <>일반인(일반기업 포함)은
경찰이나 검찰에 통보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재수가 억세게 나빠야" 단속에 걸리고 제재를 받는다는 얘기다.

지난 2월 의정부에 있는 모상호신용금고가 부도날 것이라는 루머를 퍼트려
예금인출사태를 몰고 왔던 한 주부가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루머는 효율적인 주식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악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증시는 루머를 먹고 산다"는 말처럼 증시엔 온갖 소문이 나돌면서
자연스럽게 진위가 가려져 적정주가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루머 대상기업에겐 치명적일지 몰라도 선의의 투자자에겐 투자결정에 있어
필수적인 정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루머를 모두 죄악시해서 유통을 근절할 경우 루머에 접근할수 있는 사람들
에게만 이익을 되돌려줄수 있다는 지적은 언제나 타당한 것이다.

단속한다고 엄포를 놓아도 루머는 자가발전할수 있는 능력과 필요를 갖고
있어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는 4월1일부터 시행되는 증권거래법에서는 루머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부당이득을 위한 고의성이 없더라도 증권당국이 루머를 생산 유통시킨
증권사 임직원을 문책(해임 포함) 할수 있기 때문이다.

루머의 부정적 측면을 단속하기 위해 긍정적인 면까지 질식시키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갈수록 필요해지고 있다.

<홍찬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