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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식시장의 폐장을 하루앞둔 투자자들의 심정은 울적하기만 하다.

흔들리는 잎새에 우는 시인의 마음처럼 올 한해 주가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직활강을 하듯 내리꽂았다.

두차례에 걸친 외국인 투자한도 확대도 야위어가는 증시의 체력을 메워주기
에는 역부족이었다.

증시 침체로 소수주주들의 반란이 잇따랐고 그에 따라 M&A(기업인수합병)
시장도 뜨거웠다.

새로 상장된 주식들은 상한가 행진과 시장조성이라는 명암이 엇갈렸다.

선물시장에서는 마치 어른을 대하는 어린아이처럼 외국인들에게 깨지곤
했다.

입찰등록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장외시장만이 그나마 투자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줬다.

주요 부문별로 올 한해 증시를 결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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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M&A(기업인수합병) 시장은 소수주주들의 입김이 거세진 한해였다.

소수주주들의 의결권 결집활동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다.

지난해까지 M&A가 주로 대주주들간의 거래로 이뤄졌던 것과는 다른 양상
이다.

그린메일러(Green Mailer)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점도 특징으로 꼽을수
있다.

특히 M&A에 관한한 대기업그룹 계열사도 예외가 될수 없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 한해다.

경영권이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소수주주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경영권을
위협한 사례가 많았다.

주식대량취득 제한규정인 증권거래법 200조가 내년중에 폐지됨에 따라
올 한해 M&A시장은 본격적인 지분경쟁을 위한 전초전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공개매수(Take Over Bid) 등 공식적인 방법으로 성사 또는 시도됐던 상장
회사의 M&A건수는 모두 15건(대우증권 집계)이다.

여기에 소수주주들의 지분매집활동이 있었던 대한펄프 오비맥주 한화종금
등의 사례까지 포함하면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거나 상장사가 인수주체가 된
M&A건수는 20건이 훨씬 넘는다.

특히 공개매수방식이 많았다.

지난 94년이후 공개매수 10건중 절반이 올해 실시된 것이다.

이는 내년 4월1일부터 M&A제도가 변경되면서 공개매수의 요건과 매수수량을
강화하는 이른바 "강제공개매수제도"가 실시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에서 공개매수는 매수측이 미리 확보한 위장지분을 공개화하는
"주식세탁(Equity Laundry)" 과정으로 이용되곤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실패하기 십상이었다.

나산그룹이 한길종금을 공개매수를 통해 인수한 것이 올해 첫 공개매수다.

이밖에 비상장사인 큐닉스컴퓨터의 범한정기 공개매수, 신무림제지의
동해펄프 공개매수, 효진의 항도종금 공개매수, 서륭 등의 항도종금 공개매수
등이 쉴새없이 잇따랐다.

소수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진 점은 여러가지 사례에서 볼수 있다.

SCADA(원방감시제어장치) 사업진출 공시의 번복을 계기로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한 대한펄프의 소수주주들, 지방소주시장을 사수하기 위해 시장진출
의도를 가진 OB맥주의 회계장부까지 열람하려 했던 지방소주3사, 2대주주
로서 대접을 못받은데 대한 응징으로 경영권까지 장악하려 했던 한화종금
사례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 대현의 소수주주들도 의결권 결집활동을 해 눈길을 끌었다.

대우증권 M&A팀 이황상 차장은 "대현의 사례는 12월말 결산법인인 회사측이
주가관리를 안한데다 소수주주들이 높은 배당을 요구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소수주주들의 활동은 분명 과거 우리 증시의 M&A시장 양상과는
달랐다.

프론티어M&A 성보경 사장은 "과거의 M&A시장은 대주주가 내부자 정보를
독점이용해 주가의 시세차익을 노렸던 양상이었으나 이제는 대주주가 오히려
견제받는 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대주주나 경영진이 기업경영을 하면서 소수주주들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게 성사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대한펄프 대현등의 경우처럼 부실경영을 한 책임을 묻기 위해 소수
주주들이 의결권을 결집해 탄핵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그린메일러라는 신종사업이 등장한 것도 올해 M&A시장의 특징으로 꼽을수
있다.

그린메일러란 경영권을 위협할수 있을 정도로 주식을 매집해 대주주에게
경영권을 양보하는 조건으로 경영권프리미엄을 받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올해 증시에서 숱한 M&A테마주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지분매집을 했거나 아니면 주가조작을 위해 지분매집설을 퍼트린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린메일러들의 활동은 정확하게 추적할수 없다.

M&A부티크의 한 관계자는 "그린메일러의 활동은 투명경영과 소수주주들의
보호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그러나 그린메일러들의 대부분이
사채업자들이었다는게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종합금융과 상호신용금고에 대한 인수가 많았던 점도 빼놓을수 없는 특징
이다.

나산그룹의 한길종금 인수를 시작으로 태일정밀의 대구종금지분매수,
거평그룹의 새한종금인수, 대한투금의 풍국상호신용금고인수, 대한제당의
삼성상호신용금고 인수 등이 그 사례다.

그러나 신용금고들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상당히 낮아졌다.

서울증권 M&A팀 한진영 차장은 "과거같으면 서울지역 상호신용금고의 인수
금액은 자기자본의 5배까지 이르렀으나 올해는 기껏해야 자기자본의 1배정도
의 프리미엄이 붙어졌고 그나마 가격이 맞지 않아 매물을 다시 회수한 곳도
많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우리 증시의 M&A시장은 "예측불허의 시장"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

다양한 M&A기법을 보유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M&A시장에 뛰어들 경우
엄청난 변화가 일 것으로 보기때문이다.

M&A부티크의 한 전문가는 "내년부터 실시될 새로운 M&A제도도 허점투성이다.

외국인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M&A시장의 주도권은 외국인이 쥐게 될 것"
이라고 우려했다.

< 최명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