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구 증권감독원장에게 뇌물을 준 기업은 모두 11개로 이중 합병과
관련해 뇌물을 준 기업이 5개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합병과 관련해 증권감독원이 자의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많았음을
뜻한다.

기업들간의 합병은 원칙적으로 증권감독원에 합병신고서만 제출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증권감독원은 합병비율이나 과정을 심사, 합병신고서의 수리를
거부하거나 반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실질적인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상장사끼리의 합병은 주가라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합리적인 평가가
가능한 만큼, 합병비율 산정등 합병과정에 별다른 비리가 있을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합병이다.

이는 변칙상장, 부실사상장 등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있기 때문이다.

변칙상장이란 기업공개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워지자 덩치가
큰 비상장사가 덩치가 작은 상장사를 합병, 편법으로 증시에 상장되는
것을 말한다.

부실사상장이란 공개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실한 비상장사가 상장사와의
합병으로 증시에 상장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합병허가를 받으려면 증권감독원 관계자를 무마시키는 작업이 필수코스.

변칙상장의 대표적인 예로는 우리자동차판매와 한독 그리고 효성기계와
대전피혁의 합병을 들 수 있다.

둘다 덩치가 큰 비상장사와 덩치가 작은 상장사가 합병한 케이스.

이를 통해 우리자동차판매와 효성기계는 일순간에 증시에 상장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합병신고서 제도가 도입된 지난 92년이후 올 5월말까지 모두 39건의
기업합병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92년 3건에 불과했던 기업합병이 93년 9건, 94년 10건 95년 14건으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이들 가운데 상장사와 비상자의 합병이 92년 3건 93년 8건 95년 11건
등으로 전체의 79.5%를 차지했다.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변칙상장, 부실사상장의 행운을 누렸는지 모를
일이다.

기업이 합병이라는 방법을 통해 경영효율화를 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합병이 소수의 이익을 위해 악용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다.

이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는 것은 불을 듯 뻔한 일이다.

이같은 문제점이 제기되자 증권감독원은 최근 비상장사가 상장사와 합병을
할 경우 비상장사가 상장요건을 완전히 갖추도록 하는 등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합병에 대해 엄격한 제한 규정을 마련했다.

덩치가 큰 비상장사는 자신보다 규모가 작은 상장회사와 합병하기 위해선
기업공개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그동안 신고제로 운영돼 왔던 합병관련
규정이 앞으로 사실상의 심사제로 운영돼 합병가액 산정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

그러나 합병과 관련된 법규가 완전 투명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
증권업계의 일반적이 평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합병비율에 대해 세법의 규정과 증권거래법의 규정이
서로 틀린 것을 들수 있다.

세법상에는 합병시 자산을 시가로 평가하도록 규정한 반면 증권거래법
에서는 자산을 장부가에 의해 평가토록 되어있는 것.

합병비율산정에 자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내년이면 그동안 기업매수합병에 족쇄 역할을 해왔던 증권거래법 200조가
폐지된다.

이를 계기로 기업매수합병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합병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
하겠다.

<조성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