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펀드가 우리나라를 찾은 것은 지난 93년 2월이다.

한국증시가 외국인에게 개방됐던 때는 92년 1월 3일.

앞서가는 투자기법을 자랑했던 퀀텀펀드로서는 한국증시의 성장가능성에
대해 잘못 예측한 셈이다.

미국계나 홍콩계 자금이 들어온지 1년이 지나서야 발을 들여놨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더 퀀텀펀드의 화려한 자존심을 구기게 된 것은 국내증시에
들어와서부터다.

퀀텀펀드는 한국증시에서 초기투자에 커다란 실패를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3년 국내에 들어온 퀀텀펀드는 우량주식들을 거의 매수할수 없었다.

저PER주등 소위 블루칩은 이미 미국계 홍콩계등에 의해 한도가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퀀텀펀드는 3억달러를 들여 은행 증권 보험등 소위 금융주를
사들였다.

물론 특유의 공격적 매수로 일부 종목의 대량주문을 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퀀텀의 레버리지전략은 한동안 적중한 듯 보였다.

금융주들은 그때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연말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사기가 오른 퀀텀펀드는 장기보유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앞서 사들이고 남보다 먼저 팔던 퀀텀펀드가 은행주를
사들이기만 할 뿐 좀처럼 팔지 않았다.

퀀텀펀드의 화려한 명성을 믿고 국내 투자자들이 따라오리라고 믿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퀀텀펀드의 예상은 빗나갔다.

국내 투자자들은 추격매수를 자제했고 때마침 주식시장의 변동으로
금융주는 94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매도타임을 잡지못한 퀀텀펀드는 금융주 주가가 매수가격정도로
떨어진 94년 7월에서야 보유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수익을 얻지 못했음은 불문가지였다.

이 당시 퀀텀펀드는 외환시장에서 깨지고 있었다.

94년 2월 일본의 장기불황 여파로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
퀀텀펀드는 거액을 매각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미.일통상협상 결렬로 엔화는 강세를 나타냈다.

순식간에 6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말았다.

연말에도 멕시코 페소화폭락사태를 예상하지 못해 95년상반기까지
수억달러를 날렸다.

그러니 만만하게만 여겼던 한국증시가 더욱 미울 수밖에.

결국 퀀텀펀드는 95년초 한국증시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한국시장에서 발길을 돌렸던 퀀텀펀드는 외국인 한도가 확대된 지난해
7월 다시 국내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국증시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말이다.

이 무렵 퀀텀은 일본증시에서 5억달러의 시세차익을 남기는등 94년과
95년초의 연전연패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한 상태였다.

이번에도 퀀텀의 승부수는 은행주였다.

이들은 지난해 7월 한도가 확대되는 시점에 맞춰 은행주를 집중
사들였다고 퀀텀펀드를 상대했던 증권사 국제영업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퀀텀은 또 한국증시가 곤두박질치던 10월부터는 은행주와 함께 증권주를
집중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규모는 93년보다 적은 250억여원정도였다.

퀀텀은 이해 8월과 9월에도 외환시장과 뉴욕증시에서 15억달러를 낚아
다시 "한국전"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퀀텀의 설욕전은 최근까지의 시점에서 볼때 성공한 편.

지난해 6월말 은행주의 주가지수는 513.31이다.

올4월들어 평균 598.76으로 상승한 상태다.

이 기간 수익률은 16.64%에 달한다.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상승률은 0.77%.퀀텀펀드로서는 대실패후에
높은 초과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올4월에도 외국인한도확대와 맞물려 퀀텀은 은행 증권주를 다량 사들였다.

투자규모는 약 500~600억규모로 알려졌다.

퀀텀펀드는 앞으로 어느 시점을 매도타임으로 잡아 최대의 수익률을
올릴 것인가.

앞으로 퀀텀의 매매행동이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된다.

<정태웅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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