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멀티테크의 김범훈사장.

그는 옥소리사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옥소리는 멀티미디어관련 사운드카드등을 양산해 급성장한 화제기업으로
여론의 각광을 받았다.

그런 회사를 김사장은 단 4시간만에 한솔측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김사장의 논리는 간단하다.

회사도 상품이고 따라서 얼마든지 사고 팔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난 95년 3월에 광림전자(현 한솔텔레콤)의 경영권을 인수했듯이
회사가치를 높여줄 수있는 적임자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자신의 기업도
얼마든지 팔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사장이 지난 95년 9월7일 광림전자와 옥소리를 넘긴 가격은 모두 75억원.

대략 한회사당 37억5,000만원에 판 셈이다.

자신이 주당 3,450원꼴로 매입했던 광림전자주식(9.8%)을 1만4천원씩 쳐서
넘겼고 자본금 15억원규모의 옥소리지분 59%도 만족할만한 수준에 매도
했으니 거래 자체가 만족스럽다고 김사장을 설명했다.

그러나 김사장이 옥소리를 한솔측에 넘긴 속내를 따져보면 기업방어를 위한
깊은 뜻을 발견할수 있다.

M&A 방어이론에는 자산의 매각도 포함돼 있다.

이는 인수대상 기업이 인수제의 기업에게 가장 큰 매력이 되는 사업부,
자회사, 또는 기타 자산(왕관보석자산, crown jewel assets)을 매각하는
것이다.

물론 매각자산이 대상기업 자산의 전부를 차지할 수도 있다.

김사장은 직접적으로 레이더(기업사냥꾼)의 공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상장사인 광림전자의 경우 지분율이 10%를 밑돌아 언제든지 적대적인 공격을
받을수 있을 것으로 여겼었다.

더욱이 컴퓨터등 멀티미디어의 사업환경도 좋지 못했다.

유통업체간 출혈경쟁이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졌고 그과정에서 제조업체인
S사등이 부도를 내는 상황이었다.

유통업체들이 적자를 감수하며 출혈경쟁하는 상황에서 제품을 출시해봐야
수익이 떨어지기 어려웠다.

소자본으로 사업을 지키고 성장시키는데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게
김사장의 생각이었다.

대자본이 들어와 운영하지 않으면 적자를 면할수 없을 것 같았다고 한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팔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바로 그때 한솔측으로부터 인수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결심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격적으로 인수협상이 타결됐다.

가격도 어렵지 않게 결정됐다고 한다.

매각후 일정기간은 전문경영인으로서 경영을 꾸려나갔다.

김사장의 용단으로 경영권이 한솔에 넘어간 광림전자(현 한솔텔레콤)는
개인휴대통신 사업권을 따내려는 한솔그룹의 통신주력업체로 성장하고 있다.

주가도 4만원대에서 횡보할 정도로 급등했다.

M&A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기업을 방어한
사례로 김범훈사장의 사례를 꼽는다.

비록 경영권을 넘겨줬지만 자신은 실리를 챙기고 기업가치를 극대화
시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의 경쟁력강화와 생산효율의 극대화라는 점에서 김범훈사장의 기업
매각은 적기에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국내 경영권 인수시장에서는 기업의 방어과정에서 백기사를 끌어들여
경영권을 지키는 사례가 있긴하다.

가능하다면 경영권을 지키면서 경쟁력을 강화하는게 물론 바람직하다.

그러나 경영권만을 무리하게 고수하려다가 경쟁에 뒤지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결국 부도라는 파국을 맞거나 제값도 못받고 기업을 넘기게 된다면 불행이
아닐수 없다.

따지고보면 방어자입장에서는 자존심만 지킬수 있었지 종국에는 경영권도
기업가치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선 M&A를 바라보는 경영자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이익원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