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낡은 수법들을 동원하는 시즌이 돌아왔다.

재경원 당국자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부양책을 내놓는 것은 정치의 계절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수법이 뻔하다보니 투자자들도 특별한 것이 없다는 반응들이요 주가도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투자한도를 늘린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시기가 4월초로 잡혀
역시 좋지 않은 뒷맛을 남겼다.

투자신탁에 대한 자금지원이나 자사주 펀드의 갑작스런 증액도 논란의
여지를 남기긴 마찬가지다.

증안기금이 주식 매입을 재개할 것이냐 말것이냐는 퀴즈는 증권시장의
주제라기 보다는 일종의 선거 이슈처럼 되어 예정된 결론을 준비해 놓고
있다.

물론 선거철이 오면 다급해지는 것이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본산인 영국조차도 보수당이 위태로울 때면 관변단체들까지
동원돼 위기론을 부추기는등 정치의 계절풍을 탄다.

막 선거를 치렀거나 치를 예정인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에서도 증권시장은
정치시즌의 관찰 대상 1순위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이다.

주가를 생각하는 것은 굳이 선거가 아니더라도 정치인들의 당연한
일감이다.

경제의 성장이 주가에 순조롭게 반영돼 그것이 자본의 재생산에 연결고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와 규정을 다듬어 가는 일은 평소의 할 일이지 결코
정치시즌의 함수는 아니다.

더구나 지금 우리증시의 문제는 보다 본질적인 데 있다.

내팽개쳐진 소액주주의 권한을 보호하고 주식의 액면을 기업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있도록 하는외에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을 줄여 "주가를 주가에
돌려주는 일"등이 지금 정부가 할 일이다.

예를들어 국민연금등 연기금들이 자기의 선택에 따라 주식을 사고팔며
정부가 포철의 배당율을 20% 이하로 지시하는 따위의 일을 그만두는 일들
말이다.

최근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수순은 투자자들에게 냉소만을 심는다는 것을
당국자들은 새겨야 할 것이다.

흔들리는 주가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