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은 주식 투자자들에겐 아주 좋지 않았던 한해로 기록되고 있다.

연초보다 연말 주가가 낮은 것은 아주 드문 일이지만 올해가 바로 그런
한해였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지수하락율의 이면에는 분쟁과 민원의 증가
그리고 작전에 연루돼 증시를 떠나는 증권사 직원의 급증이라는 또하나의
어두운 수치가 자리하고 있다.

브로커와 고객간의 분쟁은 세계 어느나라 증권시장에서도 다반사로 일어
나고 있는 일이지만 증권사 직원과 다투어보지 않았던 투자자가 없을 정도
라면 올해 한국증시의 문제가 그리 단순했던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증권감독원은 연중 내내 작전세력들과 숨바꼭질을 했고 하반기들어서는
거래소까지 가세해 기관의 펀드매니저나 증권사 딜러들과 쫓고 쫓기는
게임을 벌였었다.

약세장이라는 점과 작전의 번성, 민원의 증가는 모두 일정한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약세장에서 초과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작전이라는 무리수를 두어야하고
그것이 실패할 때는 늘 분쟁과 민원이 발생하는 악순환의 과정이 올 한해
주식시장을 주눅들게 했던 셈이다.

급기야 하반기들어서는 모증권사 직원이 동료직원에 의해 살해되는 참극
마저 발생해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어떻든 95년 증시의 자화상은 연초의 부광약품에서 로케트 전기를 거쳐
청산등에 이르기까지 작전세력에 대한 조사로 얼룩졌고 연말에는 큰손중의
큰손인 두전직대통령의 비자금 파문까지 증시에 직격탄을 날려 투자자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올 한해 주가조작으로 증권감독원의 조사를 받았던 케이스는 종목 기준으로
대략 40여 종목에 이르고 있다.

이중 혐의가 인정돼 해당자가 문책이상의 조치를 받은 건수만도 20일 현재
23건으로 관련자수만도 87명에 이른다.

특히 부광약품과 청산은 관련자수가 단일 주가조작 사건으로는 최대규모
였던 8명씩에 이르렀고 작전과 관련해 거액의 불법적인 자금수수까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었다.

시세조종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 이들 87명의 숫자는 지난해 같은 경우로
조치를 받았던 41명의 배가 넘는 넘는 규모였고 이중 검찰에 고발되거나
통보된 40명 역시 지난해의 21명에 비해 배가까이 늘어난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이미 지난해의 작전이 뒤늦게 조사를 받는 경우
였지만 이들이 조사를 받고 조사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증시는 덩달아 몸살을
앓았었다.

올해는 민원도 크게 늘어났다.

증감원에 접수된 민원은 모두 3백18건으로 지난해에 비해 58%나 늘어났다.

민원이 악성으로 발전한 분쟁도 지난해보다 1백20%나 늘어난 33건을
기록해 지난 90년의 악몽을 되살리게 했다.

연중내내 루머단속이라는 낮익은 단어가 증시를 괴롭혔다.

특정 기업의 부도설이 나돌았던 상반기에는 지산투자경제연구소와 강남
투자클럽이라는 사설 자문업체가 불법투자자문을 이유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검찰에 고발됐다.

루머 단속은 정치권의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에스컬레이트돼 결과적으로는
투자심리를 연중무휴로 위축시켜갔다.

몇가지 반성할 대목도 남아있다.

당국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근원적인 처방보다는 단속의 칼날만을 뽑아
들었다.

예를들어 루머의 단속에 바빴지 투자정보의 충분한 공급에는 별다른 열의를
보여주지 못했다.

주가조작에 대한 당국의 입장 역시 무조건 잡고 보자는 식이었다.

거래소와 감독원이 경쟁적으로 주가감시에 나선 10월 이후에는 기관의
펀드매니저들과 증권사 딜러들이 공격적 매매활동을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

증시 기반을 다지는 제도적 개선은 그래서 내년의 과제로 넘어가게 됐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