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증권사는 "붕어빵"으로 불린다. 모든면에서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회사들이란 뜻이다.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자본금의 크기에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자본금이 크면 자본금의 크기에 비례해서 모든 영업이 자동적으로
커지는 대형사가 된다.

자본금이 작을 경우, 비례해서 모든 영업이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불문가지다.

자본금에 따라 개성이라곤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큰
붕어빵 작은 붕어빵으로 갈릴 뿐이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아이디어를 총동원 해서 노력해봐도 결과를
놓고 보면 뛰어다니나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나 결과는 같다는 게
이제까지의 경험에서 얻은 결론입니다." 어느 증권사장의 고백이다.

과장일지 모른다.

그러나 업계를 아는 사람이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와같이 천편일률적인 붕어빵들을 만든 원천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 요인으로 구닥다리 빵틀만 고집해온 관료집단의 경직성을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번에 제시된 증권산업개편방안은 이런 빵틀을 허물어야겠다는
당위와 필요성에 따라 나온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될만하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을 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일차적 반응은 정부가
아직도 인식의 경직성과 가부장적 지시자로서의 구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서슴치 않는다.

이번 개편안이 정부가 아닌 한국개발연구원등이 내놓은 것이라는
발뺌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정부의 "임차 포"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한 "그동안 정책적 필요에 따라 각종 금융기관을 설립하고 경직적으로
세분화하여 업무영역을 규제함으로써 경쟁제한에 따른 비효율이 누적됨"
이번에 제시된 정부의 증권관련산업개편안은 현재 증권업계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면서 시작되고 있다.

이번 개편안은 따라서 "창의적 혁신을 제약하고 있는 칸막이식
분업구조"를 허무는데 촛점을 두고 있다.

정부의 의도가 아직은 완전하지 못하고 나눠먹기식 영역조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신탁은행으로의 겸업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증권산업에 "무한경쟁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의 틀에서 안주하면서 정부의 처분에 따라 왔다갔다했던 증권관련업계
에 의식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증권사는 증권사대로,투신사는 투신사대로 정부가 정해진
틀안에서 별다른 경쟁의식없이 공존을 향유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정부개편안에 대해 각 업계가 보인 반응을 봐도 그간의 편안했던
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투신사들이나 투자자문회사들은 기존의 틀을 크게 깨뜨리지 않는 대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등락에 따라 들쑥날쑥한 영업수지사정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던 증권사들만이 상대적으로 공격성을 보이며 이번 개편안에
불안감과 함께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정도다.

경쟁시대의 시작은 투신업과 증권업의 상호진출에서 시작한다.

이제까지 확연히 구분되는 분업구조를 유지해 왔던 두 업종간에 비록
자회사형태이긴 하지만 칸막이가 없어짐으로써 한 경기장안에서
이전투구를 벌여야 할 판이다.

여기에 29개의 투자자문사가 비슷한 형태로 참여하고 경제개발협력기구
(OECD)가입을 앞두고 가속화되고 있는 국내증시개방에 따라 외국의
선진증권관련업체들이 뛰어 들어 경쟁의 정도는 가관을 이룰 전망이다.

국내증권사들의 생산성은 외국증권사에 터무니 없이 뒤처져 있다.

93년말현재 증권사직원당 주식거래규모를 보면 일본증권사가 1백44억1천
만원,미국증권사가 1백19억6천만원인데 비해 국내증권사는 79.8억원에
불과하다.

증권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국내32개증권사의 최근 4년간 평균자기
자본수익률은 4.1%로 외국증권사국내지점의 8.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생존경쟁의욕은 낮았고 방만한 경영으로 비효율을 자초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증권사들은 약정고유치라는 변태적인 경쟁으로
일관함으로써 직원들과 고객들의 희생위에서 성장을 해 왔다.

투신사들은 고객에 대해 적절한 수익률을 보장해주지도 못하면서
증권사에 대해서는 약정을 미끼로 큰 손으로서 군림하는 비정상적인
영업을 지속했다.

그 대신 투신사들은 정부의 증권정책도구로 전락,자기보호에 소홀함으로써
줄곧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증권사나 투신사들의 이같은 상황은 꽉 짜여진 틀안에서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정부의 탓이 크다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증권업계가 정부의 개편안이 제시하고 있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축적해 왔는가하는데는 솔직히 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자율화된 은행권이 앞다퉈 고수익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처럼
증권업계도 신상품개발을 통한 새로운 경쟁상황을 맡게 된다.

단기금융상품,선물및 옵션등의 상품개발능력에 따라 거치른 적자생존의
격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시대에 앞서 공정한 게임의 룰이 확립돼야 한다.

연초 미국의 대형증권사인 골드만 삭스는 고객의 매매주문을 이용,
스스로의 이익을 먼저 챙김으로써 증권관리위원회(SEC)에 20만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 것은 좋은 본보기다.

골드만삭스는 고객의 매수주문을 받은 뒤 자기상품을 먼저 사고 매도
주문을 받은 후 자기상품을 먼저 매각,부당한 이익을 챙긴 것이 들통난
것이었다.

증권사의 투신업진출,투신사의 증권업진출을 앞두고 있는 국내증시도
이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때문에 자율과 함께 엄격한 규율적용을 통한 규제도 강화돼야 한다.

공정한 경쟁과 관련,계열사들을 등에 업은 대형증권사들의 독주도
우려된다.

경쟁의 적자생존원리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증권사들의 이같은
배경차이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방안도 제시돼야 한다는 것은 일부 증권사들만의
요구사항은 아니다.

고객(증권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같은 경쟁원칙은
확립돼야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