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맨들이 발이 부릅트라고 쫓아다니는 정보.

그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증시흐름이나 시대상황에 따라 성격이
조금씩 바뀌어 왔음을 알수 있다.

아마 정보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없다는 점,그 잣대도
시.공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어리숙한 정보""카더라방송" 매매정보를 거쳐 기업의 내재가치.실적등
펀더멘털정보라는 궤적을 그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보회의가 막 생겨나기 시작한 80년대초반. 정보성격을 딱 찝어서
규정하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정보와 주가의 역학관계를 잘 모르던 때라 정보를 빼내기도 수월했다.

D증권 B이사가 80년대 초반으로 기억하는 경험담은 당시 실상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사례.

"평상시 친분이 있던 국제상사 관계자가 전화를 했어요. 50% 무상증자를
실시하려는데 그럴 경우 주가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거였지요. 지점마다
전통을 때려서 매집하라고 했고 무상증자를 재료로 주가가 오르면서
적지않은 시세차익을 거뒀습니다"

지금은 철저한 보안사항으로 분류되는 그룹별 여신현황등도 당시에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고참정보맨들은 전한다.

정보맨들이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음은 당연한
일. 5.5공때는 난삽한 정보들이 활개를 친 편이었다.

S증권의 한 정보맨은 "언로가 끊긴 만큼 정보욕구가 높을 수 밖에
없던 시대분위기 때문에 "카더라방송"이 유행하는 파행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유명인사들의 감춰진 뒷얘기, "어떤 연예인과 모인사는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풍문이 그럴듯하게 각색돼서 전해졌다.

모든 풍문마다 정보가치가 있었고 그래서 정보맨들은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하는 잡식성향을 보였다.

80년대 중반이후 증시 볼륨이 커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주식 투자계층이 두터워지면서 정보와 주가를 연계하는 경향이 두드러
졌고 기업 관련정보가 폭주했다.

증권산업이 활황세를 구가하면서 이곳 저곳에서 증권사로 옮겨온 젊은
층들도 정보채널을 넓히는데 한 몫을 해냈다.

정보맨들이 안테나를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라는 것이 고참정보맨들의 시각.

정보의 위력이 인식된 만큼 정보다운 정보는 수면하에서 은밀히 유통됐고
기업체들도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정보차단벽을 세워 문단속에 나서서다.

정보맨들은 기관화장세가 심화되고 개별종목들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
정보의 성격이 매우 굴절됐다고 입을 모은다.

"주가가 오르는 종목이 관심을 끄는거야 당연하지요."

기관투자가가 손을 대거나 작전세력이 붙은 종목이라야 고수익을
얻는다"고 알려지면서 매매정보만을 쫓는 정보맨들이 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H증권 C대리)

이때문에 작전세력이나 기관의 동향을 얼마나 꿰뚫고 있느냐가 정보맨의
유능성을 재는 잣대로 활용됐다고 C대리는 털어 놓는다.

투자자들에게 종목을 세일즈하려고 정보를 개발하는 경우도 종종있었다.

"신자산주"라던가 "영등포일대 부동산보유 0인방" "M&A관련주"등은
이 범주에 속하는 정보. 올들어서는 기업의 펀더멘털 정보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보맨들 사이에 복고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D증권 J과장은 "검찰수사로 작전세력들이 된서리를 맞게된 것이 계기"
라면서 "이같은 복고풍은 증시 건전화차원에서도 매우 다행스러운 일"
이라고 밝혔다.

<박기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