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감독원이 7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재경원에 대한 업무보고 내용에는
아름다운 말들이 많았다.

불공정 매매를 근절하기위해 기동대를 편성하겠다거나 각종 규제를 원점
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은 듣기에도 시원한 얘기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추상적인 용어가 많았다.

그래서 일부 내용에서는 감독원 관계자들간에도 해석이 엇갈렸다.

해외증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국내에 들여올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날 오후까지 정리가 안되어 우왕좌왕했다.

증권사에 대한 자기자본 지도비율을 총량규제로 바꾼다는 방침도 실제로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회피했다.

업무보고 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2월도 한참을 지나고 있는 싯점에서
올해의 업무계획을 발표한다는 것자체가 우선 어울리지 않는 일로 지적
되어야 할것 같다.

증관위는 업무보고 날자를 얻어내는데만도 몇주일을 허비해야 했다.

물론 증권감독원의 굼뜬 동작을 탓할 것만은 아니다.

자율화를 추진하겠다는 증권감독원이지만 정부에 대한 타율적 근성은
이미 몸에 밴지 오래다.

더구나 증관위는 사사건건 재경원의 지휘 감독을 받게도 되어 있다.

거래법은 재경원이 증관위 규정을 변경하고 철회하는 것은 물론 취소까지
시킬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에 있어서나 현실에 있어서 증관위는 말그대로 고무도장이 돼온지 오래
됐다.

그러니 규제완화등 업무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재경원이 오케이할때까지는
자기가 하는 일이면서도 말할수 없다.

한국은행 총재, 거래소 이사장, 재경원차관을 당연직 상임위원으로한
9명의 증관위원들은 그러나 거래법의 다른 조항에서는 막강의 권한을 갖고
있다.

유가증권의 효력을 발생시키고 기업회계기준을 제정하며 증권시장의 공정
거래 질서를 확보하는 증관위다.

막강의 권한뒤에 이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독소조항이 들어있고 증시구조는
근본에서부터 정부간섭의 구조를 배태하고 있다.

정부가 수백건의 규제를 풀어도 결코 풀린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이런 식이라면 규제는 오히려 더욱 교묘, 복잡해질 뿐이다.

증관위 스스로도 이름에 걸맞는 권한을 되찾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직속의 독립기구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미국의 증관위(SEC)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증관위와 감독원의 거듭남을 기대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8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