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변해야 한다.

증권사 스스로 직원들에 대한 과도한 약정고 높이기 요구를 포기해야
한다.

약정고 경쟁은 직원들이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고객들의 의사를
무시한 불법 일임매매를 부추기고 결국에는 고객들의 계좌를 텅비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사고를 빈번히 야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과도한 약정고경쟁이 증권업계가 앓고 있는 만병의 근원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고객은 가난해지는 만큼 증권사의 배는 부푼다.

물론 증권사들의 약정고경쟁이 반드시 고객자금의 무리한 회전이라는
부작용만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관투자가들을 유치하기 위해 해외경비지원,각종 서비스등의 무료제공,
수수료 할인,손익보전,꺾기자청,향응 제공등의 반대급부가 뒤따른다.

결국 건전한 영업환경을 스스로 해치고 제살깎아먹기식의 경쟁으로
빠진다.

이런 상황은 외국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할때는 더 극에 달한다.

외국증권사들이 국내증시에서 직접 주식거래를 할수 있는 거래소회원에
가입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는 것도 국내증권사들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경쟁에 따른 혜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협회의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증권사사장들은 서로 약정고경쟁을
자제하자고 결의하지만 개선되는 기미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스스로의 문제점을 잘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고칠수 없는 사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게 증권업계의 실상이다.

증권사들이 약정고경쟁에 매달릴수 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차별화된 증권업계의 영업상황에서 약정고실적은 곧 증권사의
우열을 가르는 잣대가 되고 있는 현실이 하나의 이유다.

증권사들이 상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직원들을 채찍질해가며 약정고를
늘릴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약정고가 곧 증권사영업수입과 직결되는데
있다.

우리나라 증권사들이 전체 영업수입에서 주식위탁매매로 벌어들이는
수임료 비중은 94년현재 40%수준에 달한다.

이는 92년의 일본 31개증권사 평균인 50%선에 비해 양호한 편이지만
4대 증권사 평균인 33%를 웃도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매매손실을 감안한 총수입대비라는 점에서
실제 영업대비 수임료비중은 훨씬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국내 증권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국제화기준에서 볼때 지향해야
할 기준은 미국에서 찾아야 한다.

일본의 자본시장 국제화는 우리나라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증권사의 경우 전체 영업수입중에서 위탁매매,이른바 주식브로커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수료수입은 93년 현재 18.7%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의 수입은 자기매매와 인수등을 통해 얻어지고 있다.

국내증권사의 과대한 수수료수입의존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투신업무
허용,개인자산 위탁운용등으로 증권사 영업범위가 확대돼야 한다.

증권사의 영업활동이 다양한 미국의 경우가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은 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증권업과 일반 은행업을 분리했다.

은행이 증권업을 겸함으로써 대공황이 야기됐다는 인식에서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은행과 증권업의 울타리를 헐고 있다.

정부는 현대 금융산업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골격은 은행 증권 보험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자회사를 통한 다른
영업진출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제도를 본뜬 것이다.

그러나 국제자본시장의 통합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국제자본시장은
겸업주의 체제로 통합되는 추세다.

이러한 국제적 변화를 수용하고 일본의 금융산업이 경제규모에 걸맞지
않게 낙후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정부의 금융산업 개편 계획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제약된 울타리안에서 더디지만 증권사 나름대로 임직원들에게
약정고라는 멍에를 벗기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일부 증권사들이 인사고과에 약정고실적보다는 수익률실적을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증권사들의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제 시작된 국내자본시장 국제화의 성패가 증권사들의 변화노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 이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