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시장의 역사는 때로 시대의 이면사라고까지 말해진다.

경제와 경기가 증시를 끌어가지만 주가부침의 뒷면에는 웃고 우는 사람들의
기록도 있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사람이 있는 한편에는 전재산을 던져 자신을 배팅하는
승부사들이 있다.

물론 94년 장도 끝난 지금 그들중 어떤자들은 웃고 또다른 어떤 자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다.

피스톨 박이라 불리는 승부사가 있었고 라이플 장이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펀드매니저도 있었다.

삼부토건에 관한 한건의 조사보고서만으로 약관의 이상림씨는 일약 한국의
증시를 주무르는 신세대로 부상하기도 했다.

보너스로 1억원을 타 화제에 올랐던 증권맨이있고 연간 50%대의 기록적인
승율을 기록한 펀드매니저도있다.

사설투자자문사의 소위 쪽집게들은 인기탈랜트못지않은 화제와 고십거리를
몰고다녔다.

올해의 화제인물중 가장 먼저 거론돼야할 사람은 역시 피스톨 박.

그가 올한해 주물렀던 자금의 규모는 누적개념으로 자그마치 1조2천억원선
에 이른다.

제일은행 고유자산(은행계정)중 주식부문 가용자금 3천억원을 운용했지만
연간 회전율이 4회에 육박하고 있어 폭발적인 시세 결정력을 행사했고
가히 94증시의 황제로 군림했다.

중후한 풍채에 부리부리한 눈매의 피스톨.

박길종 증권투자부 부부장(49)은 일반인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국제금융
특히 외환거래 전문가 출신이다.

올한해 2천5백억원의 매각이익을 챙겨 제일은행의 이익절반을 증시에서
쓸어챙겼다.

주식의 성격을 가리지 말것, 투자기간의 장단을 따지지 말것을 모토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 포만감을 만끽할 정도의 수익율을 냈다.

덕분에 삼부토건매매를 이유로 감독원의 조사를 받았고 국회에서까지
거론되는 유명세를 탔다.

라이벌 조흥은행이 올린 주식투자수익의 명세를 가차없이 폄하하는 거칠것
없는 중년의 신사.

거래가 많다보니 온갖 구설수에 올랐지만 일부 작전세력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하며 호가호위한다는 것이 피스톨박의 항변이다.

내년증시를 묻는말엔 연말구상을 기다려달라며 무게를 싣고 있다.

올한해 증시를 움직여간 숨은 실력자의 한사람은 부산을 근거로 활동하는
공인회계사 정재섭씨(39).

만호제강 주식을 대량취득해 이를 신고할때까지는 모공인회계사로만
알려졌던 베일의 인물이었다.

지난 몇년간 5억원을 투자해 현재 70억원의 평가와 매매익을 기록중인,
한국의 피터린치를 꿈꾸는 그다.

삼부토건을 대량으로 매매했고 만호제강을 발굴하는등 자산주개발이 장기.

회계에 관한 전문지식을 배경으로 북밸류(Book Value)와 실제가치의 차이를
파고드는데다 문제가 되는 부동산은 철저히 현장답사하는 것이 투자원칙
이다.

그는 올한해 고가자산주 돌풍을 만들어낸 주역이었다.

일부 종목에선 지난 일년반동안 무려 9배의 투자수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시세가 더날 것으로 보고 아직 상당량을 갖고 있는 종목도 있다고 귀뜸한다.

시중의 루머와는 달리 만호제강을 공개매수할 생각은 전혀 없고 다만
주식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랄뿐이라는게 정재섭씨의 설명이다.

현재 2-3개의 숨은 보석(종목)을 가공중이라고 덧붙인다.

김극수 대리는 대우증권 역삼지점의 올한해 큰 자랑이었다.

증권사에서 1천억원의 약정을 올린 사람은 많지만 김대리의 고객계좌에는
평가손 종목이 없어 화제가 되고 있다.

30-40명정도의 소수 고객을 관리하며 개별종목에서 최고 2백%의 수익율을
냈다.

여성 고객을 받지 않을 것, 상주고객을 받지않을 것, 급한 자금을 끌어쓰는
투자가를 받지 않을 것등 세가지 영업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김대리는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개별종목장세가 전개될 것으로 보고 이
연말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

증시에서는 늘 스타가 있지만 한때의 스포트라이트를 못이겨 중도하차한
사람들도 있다.

라이플 장(장영상,36)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에게 올한해는 실패의 한해였고 회환도 컸다.

한국투자 신탁의 유능한 펀드매니저인 그는 장이 끝나는 것과 함께 운용역
을 떠나 조사부로 자리를 옮겼다.

상반기엔 최고 수익율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이름이 알려지고
작전혐의로 감독원의 조사를 받으면서 수익율이 급격히 나빠졌고 끝내
펀드매니저 자리를 떠나야 했다.

떨끝만한 의혹도 있을 수없다고 항변하는 그지만 구설수에 올랐고 여론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다.

한국투신의 정재봉과장, 대한투신의 서임규과장에게는 94증시가
펀드매니저로서는 최고의 해였다.

3천억원이 넘는 자산운용에서 35-40%선의 높은수익을 올렸다.

진로종합식품등에서 10배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고 연말의 우량주 시세하락
으로 같이 고통받고도 있다.

이들 스타의 반열에 거리의 투자자문업자로 불리는 사설투자자문회사의
"쪽집게"들도 빼놓을수 없다.

현대투자연구소의 조승제사장이나 한국증권리서치의 엄길청소장등 일부
인사들은 가는곳마다 투자자들의 성원을 받았고 세미나마다 초만원을
이루어 증권시장 제도권밖의 "제3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스타들의 이면에 우리들의 주인공 대중투자가들이 있다.

대중투자가들에게 올한해는 참담한 것이었다.

허덕이며 시세를 쫓았지만 그럴수록 시세는 더욱 빠르게 달아났다.

고가블루칩이 상투를 치고서야 매수에 가담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식으로 이상한(?) 종목에서 이상한 시세만 나고 있어 발을 굴렸다.

폭등하는 제약주를 따라잡을수도 없고 그렇다고 몇배씩 오른 자산주들을
뒤늦게 사들이기에는 장세전환이 너무 빨랐다.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줄 모르고 당황하면서 보낸 한해.

그렇게 인물로본 94증시는 끝났다.

이제 돼지꿈의 새해 증시가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또다른 스타를 꿈꾸는 증권맨들이 있을테고 시세를 뒤쫓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대중투자가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모두의 꿈을 걸고 새해를 준비하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