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의 컨트리 리스크(개별국가가 갖는 투자위험도)가 이렇게 클줄
몰랐습니다" 지난1월14일의 증시진정책이 나온뒤 외국증권사의 한관계자가
밝힌 첫마디이다. 주가의 수준을 인위적으로 규제하려는 우리정부의 증시
정책에 대한 강한 불만을 단적으로 표출한 말이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증시격언처럼 수급에 따른 시장논리가 먹혀들지
않는 곳에선 공정한 수익률게임을 할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만큼 우리
시장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최근 외국인들이 매도우위를 보이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이들의 매수열기가
식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증거금징수로 인한
매수세 실종이 순매도사태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의 한관계자는
"증거금을 물린 다음부터 외국인들의 태도는 짙은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이들의 매수세가 위축되면서 이달후반들어선 활발하던 외국인사이의 장외
거래마저 둔화되고 전반적인 장외프리미엄도 떨어졌다"는게 박정삼쌍용투자
증권 국제영업부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외국인투자자들에게도 20%의 위탁증거금을 물린 "1.14조치"의 충격
은 대단했다. 이 조치가 첫시행된 지난1월17일 외국인들은 54억만주의 매도
우위를 보여 5개월만에 처음으로 순매도를 기록했다. 증거금이 징수되기
전인 지난1월 상반월중 3백57억원에 달했던 이들의 하루평균 순매수 주식
수도 1월 하반월엔 13억원으로 급감했다.

국내 모증권사의 국제영업부장은 "이같은 파장을 우려해 외국인들에게
증거금을 물려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를 전달하러 재무부에 들어갈려던
참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규제책이 나올 것이라는 일부 언론보도를
접한 그는 곧이어 공식발표됐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선 더이상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말이 쉬워 증거금이지만 외국인들이 증거금을 통해 매수주문을 내는데는
절차가 까다롭기 짝이없다. 외국의 펀드매니저는 국내증권사에 매수주문을
내는 동시에 해외의 주거래은행에 송금을 지시하고 이은행은 다시 국내
외국환은행에 송금사실을 통보하게 된다.

문제는 이처럼 여러 은행을 거쳐 증권사의 외국인계좌에 입금하기까지는
시차등으로 인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증거금 입금사실을
확인하는데 하루정도가 걸려 외국인의 매수주문을 의뢰받고도 제때 매수
주문을 못내는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1.14조치"이후 외국인에 대한 증거금률을 40%로 올렸다가 다시 20%로
내렸지만 이들에게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1백만원어치를
사는데 미리 40만원을 보내든 20만원을 내든 절차상 번거롭기는 마찬가지
라는 지적이다. 증거금을 아예 없애지 않는 이상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이같은 정책변수가 오히려 불만스럽다는 것이다.

또 투자에 대한 평가손익을 따져야 하는 펀드매니저들은 환수수료도 무시
할수 없는 요인이라고 밝힌다. 증거금을 내기 위해 외화를 원화로 바꿔야
하고 체결되지 않은 금액을 다시 외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쓸데없는 부담을
2중으로 져야한다는 얘기다.

외국인들의 또다른 불만은 외국기관의 투자등록 요건 강화. 지난 1월중순
외환관리 차원에서 외화자금의 유입을 억제하겠다는 뜻으로 국내투자등록을
신청할때 정관및 지분참여자의 국적별 내역등을 일일이 제출토록 한것이다.
이에따라 지난1월중 투자등록기관은 29개에 달했으나 2월엔 단4건으로 줄어
들었다. 지분참여자들이 신분노출을 꺼림에 따라 외국기관의 신규진출
자체가 극도로 위축됐다는 증거이다.

"외국인투자한도 확대를 늦추는 것은 거시적인 경제운용상 불가피하다면
그래도 이해가 간다. 북한핵문제도 어제오늘 돌발적으로 터져나온 얘기가
아닌 만큼 덜 충격적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을 직접적으로 뒤흔드는 정책
변수가 언제 어떤 형태로 불쑥 등장할지 모른다는게 가장큰 우려이다"

최근의 우리시장을 바라보는 외국증권사 관계자의 이같은 푸념도 증시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감을 나타낸 것에 다름아니다.

물론 발등의 불로 떨어진 북한핵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우리
나라의 컨트리 리스크를 높이는 큰요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된다손 치더라도 돌발적인 정책변수가 우려되는한 장기
안정적인 외국인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시장에 들어온 외화자금의 급속한 공동화현상을 통한 증시교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시장논리를 존중하는 정책의 신뢰성이 유지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손희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