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쯔충과 멀티버스의 만남…'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벌린(량쯔충 분)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 1세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웨이먼드(키 호이 콴)와 결혼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왔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어느새 중년이 된 에벌린의 삶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새 난관에 부딪히기만 한다.

딸 조이(스테퍼니 수)는 여자친구를 데려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에블린의 모든 것을 마뜩잖아하는 아버지는 미국에 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세금 문제로 세탁소가 가압류될 위기까지 닥치지만 남편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에벌린은 상상도 못 했던 세계를 마주한다.

영수증을 가득 싣고 담은 가방을 들고 국세청을 찾은 날, 다른 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를 마주하면서다.

알파 웨이먼드는 에벌린에게 인간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인생을 바꾸며, 멀티버스(다중 우주) 속 수많은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존재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이 세계의 웨이먼드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또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되면서 빌런으로 변한 '조부 투바키'가 세계를 파멸시키고 있으며 이를 구할 사람은 에벌린이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이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한 에벌린은 도망치려 하지만 조부 투바키가 딸 조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족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량쯔충과 멀티버스의 만남…'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량쯔충(양자경)의 첫 할리우드 단독 주연작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미국 이민 1세인 중년 여성이 멀티버스와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난 3월 말 미국 개봉 당시 10개 상영관에서 상영됐으나 입소문을 타고 한 달 만에 상영관 개수를 3천 개까지 늘리며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냈다.

영화는 SF 소재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다양한 장르를 융합해 신선함을 준다.

이민 1세와 2세의 갈등, 중년 부부의 사랑을 그리는 가족 드라마이자 쿵푸 동작을 활용한 액션 영화이며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 영화이기도 하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은 작고 미미한 존재일 뿐이며 그저 쳇바퀴 돌듯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조부 투바키의 자조 섞인 대사, 그에 맞서는 에벌린의 의지, 친절함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웨이먼드의 호소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량쯔충과 멀티버스의 만남…'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벌린이 수많은 우주를 경험하며 겪는 혼란은 인터넷 속 과도한 정보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대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를 연출한 '대니얼스 듀오'(대니얼 콴·대니얼 쉐이너트 감독)는 "인터넷은 우리와 함께 성장하면서 우리를 망쳤다.

우리에겐 당연한 삶의 방식이지만 부모님들은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조부 투바키가 인터넷이 만든 세대 차이를 보여주는 인물이며 멀티버스는 인터넷을 비유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 '스위스 아미 맨'(2016)으로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이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기발한 연출을 뽐낸다.

모든 사람의 손가락이 핫도그인 세계, 우주와 우주 사이를 옮겨 다니는 '버스 점핑', 눈의 홍채를 닮은 '베이글 블랙홀' 같은 아이디어는 몰입감 있는 연출 방식으로 마치 관객이 멀티버스를 직접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량쯔충의 노련한 연기도 큰 몫을 해낸다.

자칫 기괴하게만 보일 수 있는 실험적 소재와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깊은 울림을 준다.

내달 12일 개봉. 139분. 15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