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가 되어버린 우상을 마주한 팬들의 이야기
'성덕' 오세연 감독 "팬들 이야기…다시 사랑할 힘 얻어갔으면"
"팬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동안 없었잖아요.

문화산업의 주축이 되고 기둥을 세웠지만, 그동안 너무 그림자처럼 치부된 경향이 있죠. 팬 개개인의 목소리를 들을만한 기회가 없었잖아요.

"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은 범죄자가 되어버린 우상을 마주한 팬들의 이야기다.

가수 정준영의 열렬한 팬이었던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배급사 사무실에서 만난 오세연 감독은 "저처럼 상처받고 떠난 팬만 있는 게 아니라 여전히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궁금하고 신기했다.

'왜 그럴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성덕' 오세연 감독 "팬들 이야기…다시 사랑할 힘 얻어갔으면"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작품 방향은 조금씩 변화했다.

우상의 추락을 보고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닌, 감독 자신을 비롯해 소위 '탈덕'(좋아하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겼다.

"처음에는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우상화에 대한 얘기를 좀 더 광범위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또래 팬들을 만나다 보니까 그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싶더라고요.

여전히 팬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로 한 것은 굳이 만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도 있겠단 생각 때문이었죠."
작품 속 인터뷰이 대부분은 감독의 지인이다.

함께 정준영을 좋아했던 친구부터 승리, 강인 등을 좋아했던 이들, 고(故) 조민기의 팬이었던 감독의 엄마까지. 실제 친분을 바탕으로 형성된 편안한 분위기 속 솔직한 날것의 대화는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오 감독은 "주변 친구들에게 이런 내용의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니까 다들 '사실은 나도…'라며 경험을 얘기해줬다.

그런 얘기들을 계속 듣는 게 너무 신기했다"고 회상했다.

'성덕' 오세연 감독 "팬들 이야기…다시 사랑할 힘 얻어갔으면"
"처음엔 팬덤 내에서도 유명한 팬을 섭외해야 하나 했어요.

그런데 인터뷰는 결국 대화를 하는 거잖아요.

영화를 위해 관계를 맺고 출연을 성사시키는 것보다는 정말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하는 게 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했던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요.

주변의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게 의미 있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
감독은 아이돌 팬에서 시야를 넓혀 정치인의 열성 지지자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오 감독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연예인 팬덤과 정치인 팬덤을 연결 짓고 싶었다"며 "단순하게 따지자면 공통점은 범죄자가 된 사람을 두고 돌아서는 게 아니라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는 것뿐인데 제가 느끼는 그 닮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고 설명했다.

"저한테 '덕질'은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해주는 것이거든요.

더 열심히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죠. 혹시 저처럼 덕질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이라면 '성덕'을 보면서 웃기도 울기도 하며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해요.

우리의 사랑에는 죄가 없잖아요.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