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리즈물 연출…마약왕 소탕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이야기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 소재…설득력 있는 각색이 가장 큰 어려움"
'수리남' 윤종빈 "목숨 건 연출…촬영 후 만신창이 됐죠"
"목숨을 건 위험한 거래('수리남'의 홍보 문구)가 아니라 목숨을 건 연출이었어요.

(웃음) 6부작을 찍고 나니까 십이지장 궤양에 위궤양까지. 몸이 그냥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왔죠."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공작' 등을 만든 윤종빈 감독이 영화 같은 연출을 내세운 드라마 '수리남'으로 돌아왔다.

1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윤 감독은 "시리즈물 제작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기 때문에 멋모르고 도전했다"며 "황동혁 감독은 시즌2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저는 다시는 못하겠어서 딱 '오징어 게임' 아래 수준까지 만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수리남'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1년 체포된 한국인 마약상 조모 씨와 그를 체포하기 위해 활약한 민간인 K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캐릭터마다 개성 강한 색깔을 입히고, 믿고 보는 배우 황정민, 하정우, 박해수, 조우진 등의 열연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윤 감독은 시리즈물 제작에 도전한 이유에 대해 "원래는 영화로 제작해달라고 제안을 받았지만, 인물의 전사를 다 잘라내고 2시간 분량으로 줄이면 변별력 없는 액션물이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수리남' 윤종빈 "목숨 건 연출…촬영 후 만신창이 됐죠"
"처음에는 '범죄와의 전쟁'이랑 느낌이 겹칠 것 같아서 제작을 거절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범죄와의 전쟁'을 제 대표작으로 꼽더라고요.

'대중이 나한테 원하는 게 이런 건가?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수리남' 집필부터 연출까지 맡았다는 윤 감독은 특히 어려웠던 부분으로 비현실적인 실화를 설득력 있게 각색하는 과정을 꼽았다.

윤 감독은 "실제 K씨를 세 번 정도 실제로 만났고 K씨의 녹취록을 정리한 문서도 읽었는데 너무 드라마틱하고 클리셰(Cliché·판에 박힌 듯한 진부한 표현이나 문구) 같아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K씨는 출소 후 수리남으로 돌아가서 조모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머리를 밀고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조직원들과 싸움을 벌이고 다녔대요.

영화에서 많이 본 내용이잖아요.

(웃음) 오히려 실화를 더 사실적으로 각색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죠"
총 6부작 중 1∼2회 두 편을 K씨의 실제 얘기를 바탕으로 한 강인구(하정우 분)의 전사를 설명하는 데 할애한 것도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윤 감독은 "저도 처음에는 3년 동안 언더커버로 지내는 등 자기 인생의 큰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마약왕을 체포하기 위해 애쓴 K씨를 납득하기 어려웠는데 K씨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해가 됐다"며 "환갑이 다 되셨는데도 정말 강인한 군인의 얼굴이었다"고 말했다.

'수리남' 윤종빈 "목숨 건 연출…촬영 후 만신창이 됐죠"
윤 감독의 전작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고생하는 K-가장 '수리남'의 강인구가 영화 '범죄와의 전쟁' 최익현(최민식)과 닮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윤 감독은 "두 작품 모두 부성을 중요하게 다룬다"며 "강인구도 '가난한 아버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돈에 집착하지만, 최익현과는 달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기 딸 같은 어린아이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수리남'은 결국 체포된 마약왕 전요환(황정민)이 강인구에게 자신이 줬던 야구공을 돌려달라는 말을 전하며 막을 내린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야구공 안에 마약이 들어있다' ,'마약을 숨겨둔 위치가 적혀있는 이동식저장장치(USB)가 들어있다' 등 추측이 난무하지만, 윤 감독은 야구공에는 다른 연출적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요환이 가진 유일한 진품이 야구선수 박찬호 선수가 사인한 공인데 그걸 강인구에게 줬다는 건 그를 진심으로 신뢰했다는 뜻"이라며 "야구공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수리남' 윤종빈 "목숨 건 연출…촬영 후 만신창이 됐죠"
야구공에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인 박찬호 선수의 사인이 있는 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윤 감독은 "강인구는 성공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수리남 드림'을 품고 떠나지만 결국 실패해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 사인 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논하면서 과연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곳'이 실재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첫 시리즈물을 제작한 소감으로 윤 감독은 "영화의 매력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스크린을 전제로 하는 작품을 찍는 데 훈련이 돼 있어서 사실 '수리남'을 휴대전화나 노트북으로 보시게 된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며 "큰 스크린과 사운드를 고려하고 만드는 영화는 아무래도 드라마보다 꼼꼼한 연출적 디테일이 담겨있다"고 했다.

"다음 작품으로는 영화가 하고 싶은데 요즘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 액션물로만 한정돼가는 것 같아서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싶어서 영화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다음 작품으로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수리남' 윤종빈 "목숨 건 연출…촬영 후 만신창이 됐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