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N '고딩엄빠'
/사진=MBN '고딩엄빠'
"이 사회의 구성원이면서, 쉽지 않은 선택과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 '고딩엄빠'가 고민과 어려움을 당당하고 굳세게 이겨내는 모습을 방송에 담았습니다. 10대와 그들의 부모가 손 잡고 공감하며 보는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MBN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이하 '고딩엄빠')의 남성현 PD는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최근 방송분은 남 PD의 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고 어린 엄마, 아빠가 성장하는 모습은커녕, 어린 부부의 가정폭력 사건을 가감없이 생중계하며 프로그램 취지와는 반대 노선으로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중심에는 19세 엄마 박서현, 21세 남편 이택개가 있다. 두 사람은 지난 3월 출산을 앞두고 일상을 공개했다. 중국에서 온 이택개는 학교에 늦게 입학해 2살 어린 박서현과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사랑이 싹 텄다. 두 사람은 함께 출산 준비물 리스트를 보며 육아용품을 구매했고 살림살이 없이 허전한 집에서도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

두 사람의 불화는 출산 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육아의 장벽으로 두 사람이 다투는 상황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박서현과 이택개는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였다. 박서현은 "아기가 태어나고 육아하면서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 때문에 자주 싸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택개는 지난 4월 1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내 박서현으로부터 가정 폭력을 당했다며 폭로했다. 이택개는 수원가정법원 안산지원의 임시 조치 결정문을 증거로 게재했다.

이택개는 박서현이 자신과 싸우는 도중 칼을 가지고 와서 아기와 자신을 향해 '죽여버릴까?'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박서현은 경찰 조사를 받았고 접근 금지 처분을 받았다.

'고딩엄빠' 제작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두 사람의 상황을 파악 중"이라며 "원만히 해결되도록 돕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제작진은 이택개, 박서현의 심리상태가 걱정되어 상담 및 정신과 내방을 함께 했고 산후우울증, 우울증을 깊이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관계자는 "두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을 마련하던 중 급작스레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출연자의 안전한 출산과 산후조리, 건강한 아이 육아에 대해 관련 기관과 전문 NGO 단체와 함께 필요한 지원을 진행했으며 이후 두 사람과 아이의 안전, 건강에 지속해서 관심을 쏟을 예정"이라고 약속했다.

지난 8일 방송에서 제작진은 박서현, 이택개 부부의 갈등을 봉합하겠다는 취지로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택개는 현재 아버지의 집에서 딸 하은 양을 키우고 있었고, 박서현은 자신이 딸을 양육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스튜디오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보았으나 두 사람은 갈등을 봉합하지 못했다.

방송 직후 이택개는 SNS를 통해 "며칠 전 아이를 보러 온 전혀 바뀌지 않은 너의 행동을 보고 많이 생각했다"며 "너는 하은이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와 하은이는 더 이상 너를 받아줄 수 없을 것 같다"고 이별을 선언했다.
/사진=MBN '고딩엄빠'
/사진=MBN '고딩엄빠'
'고딩엄빠'는 결국 열아홉, 스물한 살인 미성숙한 부부의 사생활 파탄 과정을 생중계한 꼴이 됐다. 방송에서 MC 박미선 등은 이택개에게 SNS에 흉기 협박 등 폭로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택개는 유튜브 '연예뒤통령 이진호' 채널에 출연해 "(박서현이) 영상보고 말 안되는 소리 하고, 자꾸 유리해지려고 웃는 등 스튜디오에서 연기했다"며 "(출연자들이) 애 엄마 말만 듣고 평소에 무슨 일 있었는지 제게 물어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서현이) 절 죽여 버린다고 한 것도 한 다섯 번째"라며 "만약 제가 흉기를 들었더라면 제 편을 들어줄 사람 한 명도 없었을 거다"라고 토로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이 편파적이고 자극적이었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시청자들은 "아이 앞에서 남편에게 칼 들이민 인간은 감싸기 바쁘고 SNS에 글 좀 올렸다고 범죄자로 몰았다", "사생활 노출도 어느 정도까지 보호해 줘야 하는데 너무 적나라하게 방송 나가는 것 보니 어른으로서 참 안타깝다. 공정하게 대처할 거 아니면 이런 방송 많이 불편하다",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느라 산으로 가고 있다. 역겨워서 못 보겠다",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명확히 파악하고 두 사람에게 조언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방송에 출연하는 일반인의 각오는 가볍지 않다. 리얼리티 예능을 표방하기 때문에 사생활 노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택개, 박서현도 마찬가지다. 이제 비난은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며 이제 그들의 인생에 '고딩엄빠'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됐다.

'고딩엄빠'는 지난 1일 방송의 전국 시청률(닐슨 코리아)은 0.9%에 그쳤으나 이택개, 박서현 부부 편이 담긴 8일 방송분은 2.3%로 반짝 상승했다. 결국 제작진만 재미를 봤다. 제작진이 좀 더 사려깊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더라면 시청률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공감까지 받았을 것이다. 제2의 이택개, 박서현 부부가 나오지 않도록 제작진의 자정 작용이 필요한 때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