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퍼포먼스 여정 담은 다큐멘터리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목포에서 베를린까지…'평화하는' 10대들의 발걸음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탔을 때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목포나 여수, 거제 등의 역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것 같다.

그러나 서울역도 한때는 유럽의 주요 역처럼 국제 터미널 역할을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베를린, 파리까지 유라시아를 횡단할 수 있었다.

38선이 그어지고 한국전쟁이 터진 후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지만.
퍼포먼스 그룹 '레츠피스'는 옛 우리 선조처럼 목포에서 서울, 블라디보스토크를 넘어 베를린으로 향했다.

언젠가 남북을 잇는 철도가 연결돼 기차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다.

이들의 여정이 다큐멘터리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에 담겼다.

2017년 가을, 뉴스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상기된 얼굴로 '전쟁'을 말하는 장면이 연일 나왔다.

대안학교인 로드스꼴라 출신 청년들은 앞으로 이 땅에 살 청년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퍼포먼스 그룹 레츠피스를 꾸린다.

독특한 이 이름을 붙인 건 "평화를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웃기는데, 평화를 '하는' 것은 말이 되는 것 같아서"라고.
이듬해엔 목포역, 서울역을 차례로 훑은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까지 갈 계획을 세운다.

물론 북한을 가로지를 수 없어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한다.

목포에서 베를린까지…'평화하는' 10대들의 발걸음
대부분 10대로 구성된 이들의 발걸음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의 혼이 밴 장소에도 구석구석 닿는다.

신간회 목포지회 터전인 목포청년회관을 들르는가 하면 천안의 유관순 열사 초혼묘(유골 없이 혼백을 기리는 묘)에 꽃을 두고 애도하기도 한다.

밀양에서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 묘를 찾아 이정표를 설치한다.

무엇보다 브라질 전통 퍼커션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게 가장 중요한 일정이다.

광장에 나선 아이들은 구경꾼에 둘러싸여 스타가 된다.

외국인들은 노래 가사를 이해하진 못해도 손뼉을 치고 함께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주눅이 들 법도 하지만, 아이들은 시종 웃는 낯으로 평화를 노래한다.

그러나 명랑하기만 할 것 같은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걱정도 있다.

대안학교를 다니며 '보통'이 아니라 '예외'로 취급되는 데서 오는 고민, 학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다양하다.

긴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친구와 팀원에게 각자의 근심을 털어놓으며 우정은 더 단단해진다.

카메라는 이들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서 한 뼘 더 성장해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담았다.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던 아이들은 어느새 아홉 편의 멋진 에세이를 써내는 사람이 됐다.

이 다큐멘터리가 '평화 하자!'고 강하게 외치는 영화가 아니라 청소년 성장 영화로 느껴지는 이유다.

오는 30일 개봉.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