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기이한 잔혹동화…영화 '아네트'
'라라랜드'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법하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새 영화 '아네트'는 사랑에 빠진 예술가 남녀가 주인공인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라라랜드'와 비슷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도 같다.

그러나 '라라랜드'가 사랑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예술가의 모습을 그린 데 비해 '아네트'는 이들이 사랑과 꿈 모두를 이룬 뒤 파도처럼 덮친 허무와 불행에 눈을 맞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애덤 드라이버)는 무대에 섰다 하면 객석을 가득 채우는 스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왜 코미디언이 됐는지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 그가 촉망받는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코티야르)과 사랑에 빠진다.

둘은 코미디와 오페라의 차이만큼 결이 다른 사람이지만 부부의 연을 맺고 딸 아네트까지 얻는다.

세월이 흘러 안은 톱스타로 성장하고, 헨리는 아내와의 성생활을 소재로 통하지 않는 농담이나 던지는 퇴물이 됐다.

자신을 조롱하는 관객에게 분노를 터뜨리고 술로 나날을 보낸다.

자기를 끝없이 혐오하면서도 자아는 비대해진 이 '어른 아이'는 결국 안을 살해하며 불행의 서막을 연다.

안이 죽은 직후 딸 아네트에게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빛을 보면 어머니 안이 그랬듯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헨리는 아네트를 세계 곳곳의 무대에 올리고, 아네트는 부모를 뛰어넘는 대스타가 된다.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기이한 잔혹동화…영화 '아네트'
영화는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같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꼬마 아네트는 내내 목각 인형의 형상으로 등장해 기이한 모습을 연출한다.

노래할 때도 마리오네트처럼 공중에서 줄에 묶인 채 이리저리 움직여지며 입을 벙긋거린다.

어머니의 저주로 내려진 재능, 아버지의 강압이 끌어낸 아네트의 노래는 그래서 영혼이 없다.

심지어 아네트는 노래할 때를 빼곤 말도 하지 않는다.

아네트가 처음으로 말을 한 것은 고별 공연에서 헨리가 살인자라고 고발할 때다.

아네트는 감옥에 갇힌 헨리에게 "아빠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부성애의 권리까지 박탈한다.

그제야 아네트는 사람의 모습을 하게 된다.

진짜 자기 목소리를 냈을 때 한 명의 인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미국 밴드 스팍스의 음악은 극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다른 뮤지컬 영화 노래와는 사뭇 다르게 단조로운 멜로디와 반복되는 가사가 특징이다.

드라이버와 코티야르 등 배우들은 대부분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다.

이 밖에도 뮤지컬 영화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영화 시작 전 카락스 감독이 음성으로 관객에게 "숨도 쉬지 말라"고 안내하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엔딩 크레디트에서 인사말을 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네트'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은 독창성이다.

카락스 감독은 예술가의, 넓게는 인간의 심연과 주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 편의 꿈 같은 영화로 만들었다.

'홀리 모터스' 이후 9년을 기다린 팬들의 갈증이 비로소 해소될 것 같다.

오는 27일 개봉.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