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여성영화제 씨네토크, 예매 시작 20초만에 매진 기록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가 20년 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관객을 만났다.

2001년 개봉한 영화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던 위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갓 스무 살이 된 다섯 명의 고등학교 친구들을 통해 젊은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세밀하게 그린다.

20년만에 디지털로 돌아온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28일 오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고양이를 부탁해'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의 특별 상영과 그에 앞서 열린 씨네토크는 예매가 시작되고 20초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20년 만에 다시 모인 정재은 감독과 주연 배우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은 모두에게 이 영화가 얼마나 의미 있는 첫 작품이었는지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서로 다른 친구들을 보듬는 착하고 엉뚱한 태희 역을 맡았던 배두나는 "제가 아직도 '고양이를 부탁해'의 태희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깝게 느끼는 캐릭터"라고 했다.

"원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게 저의 원동력이에요.

그래서 '고양이를 부탁해'도 추억으로 간직하고 많이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같이 만나고 (영화에 쓰인) 음악도 듣고 하면서 '나는 잘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로받는 느낌이고 많은 분들한테 그런 정서를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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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 시나리오를 통해 만난 태희는 "잘 모르겠더라"고 했다.

그는 "시나리오만 보고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캐릭터를 잘 모르겠으니까 내가 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들어갔다"며 "당시 제 모습이 많이 묻어있는 캐릭터"라고 애정을 표했다.

여상을 나와 증권사에 취직한 예쁜 깍쟁이 혜주를 연기했던 이요원은 "첫 주연작이고 유일한 청춘물"이라며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우리가 고등학교 동창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이요원도 연기할 당시에는 혜주가 "얄밉고 좋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저 역시 친구들과 비교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너무 일찍 사회를 알아버려서 꿈을 갖고 사는 친구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너무 나 같아서 싫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엔 큰 애정이 없었는데 다시 보니 지금 이 시대를 사는 20대 여성의 모습을 대변하는 게 혜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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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디지털로 돌아온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이 영화로 데뷔한 옥지영은 "평상시 저는 말도 많고 장난도 많이 치고 활발한 아이인데 촬영하면서는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힘들었다"며 웃었다.

배우의 실제 이름과 같은 영화 속 '지영'은 그림을 잘 그리지만 가난한 형편에 꿈을 펼치지 못하고 움츠러들어 있는 캐릭터다.

옥지영은 "감독님과 처음 만나 대화하다가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감독님이 내면의 뭔가를 건드렸던 것 같다"며 "내 안의 것들을 숨기고 감추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게 영화 속 지영과 비슷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정 감독은 "필름에서는 배우 눈동자의 움직임 같은 걸 보지 못했는데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하고 나니 정말 많은 것들이 잘 보여서 필름의 기억을 너무 쨍하게 깨는 것이 아닐까 싶다"면서도 "20주년에 맞춰서 하게 돼 기쁘고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이 영화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건 아니지만, 미래의 관객들과 또다시 소통할 수 있는 창문 하나를 열어놓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새로운 관객들과 이 영화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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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디지털로 돌아온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