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유하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어렸을 때 과하게 에너지를 소비한 이들이 크게 공감하는 말이 있다. 바로 에너지 총량의 법칙. 인간이 살아가면서 쓸 수 있는 에너지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빠르게 이를 써버린 후에는 무력감을 느끼는 이른바 '번 아웃'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약 10년의 걸그룹 연습생 기간을 거친 가수 유하와의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에 문득 그의 에너지는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졌다. 솔로로서는 이제 갓 1년이 되어가는 풋풋한 싱어송라이터지만, 가수를 꿈 꿔온 시간의 무게는 그에 10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쭈뼛거리며 다가왔지만 이내 환하게 무장해제 웃음을 지어 보인 유하는 솔직함, 털털함, 자유분방함으로 똘똘 뭉친 에너지가 차고 넘쳐 상대의 기분까지 맑아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오랜 K팝 팬들이라면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을 테다. YG엔터테인먼트의 공개 연습생 '퓨처 투애니원'의 멤버였던 유하는 11살 때부터 데뷔를 목표로 실력을 갈고닦아왔다. 하지만 연습생 신분으로만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회사를 나왔다. 그러다 지난해 유니버설뮤직과 계약을 체결하고 솔로 가수로 새로운 출발에 나섰다.

"걸그룹이 무산됐을 때나 유니버설뮤직에서 솔로를 한다고 했을 때나 늘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가끔 걸그룹들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고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에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유하였다. 솔로의 최대 강점은 직접 곡을 쓰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자신을 오롯이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유하는 "나만의 콘셉트에 백 퍼센트 집중하며 연구해 볼 수 있다는 게 좋다. 다채롭게 도전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는 거다. 지켜봐 주시는 분들도 혼자 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얘가 이런 것도 잘하네?'라고 재밌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미 음악팬들 사이에서 유하의 개성 있는 음색은 입소문을 타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오늘 조금 취해서 그래'를 들은 한 팬은 음원 사이트 댓글란에 '한국의 두아 리파'라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해당 댓글을 봤다는 유하는 "(두아 리파는) 너무 멋있는 음악을 하는 분인데"라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아마 그 노래가 지금까지 발표한 곡 중 성적이 제일 좋았을 거다"고 재치있게 말했다.
유하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유하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직접 작사·작곡은 물론 편곡까지 책임지고 있는 실력파 유하는 지난 1년간 편안한 느낌의 발라드부터 레트로한 비트가 인상적인 신스웨이브, 몽환적인 분위기와 청량함이 어우러진 신스팝까지 다채로운 장르를 선보여왔다. 24일 오후 6시에는 더블 싱글 '스위트-티(Sweet-Tea)'를 발매, 상큼하고 펑키한 댄스곡 '체리 온 탑(Cherry On Top)'과 '아이스 티(ICE T)' 두 곡을 내놓는다.

장르적으로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묻자 유하는 "정해진 색깔이 없다. 목소리를 다양하게 쓰는 걸 좋아해서 발라드처럼 부드러운 노래도 좋아하고, 또 EDM 스타일도 잘한다"고 답했다.

그는 "처음엔 이게 단점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다양성을 지녔을 때의 강점이 더 크다고 본다. 다채로운 음악을 만들어서 다양하게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다음 싱글이나 앨범도 당연히 또 다른 스타일로 작업해 볼 계획이다"면서 "그걸로 안 좋은 피드백을 받는다고 해도 두렵진 않다. 다 도전해보는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렇다면 곡을 만드는 입장에서 바라본 자신의 매력은 무엇일까. 유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구현해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렇게 하려고 연구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르적으로 정해진 색깔이 없다 보니 어떤 스타일에든 목소리가 잘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곡을 어떻게 잘 살리고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다. 노래도 다양하게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유하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유하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대화를 하면 할수록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단단함이 엿보이는 유하였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자유로움'이 바탕이 됐다.

유하는 "작업을 할 때 1순위로 여기는 게 '재밌게 하자'는 거다. 억지로 하거나 이 곡이 나에게 어떤 부와 명예를 가져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극히 상업적으로 변하게 된다.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고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한다. 동시에 이걸 언제 발표하면 가장 듣기 좋을지 똑똑하게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저는 대중분들에게 롤모델인 가수가 되고 싶어요. 음악적인 것 외에도 패션이나 이미지, 말투, 생각, 사소한 일상적 모습까지 닮고 싶은 아티스트였으면 해요. 무대 위에서도 멋있었으면 하지만 아래에서도 빛이 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거죠. 그런 포부로 일을 하고 있어요."

"음악적으로는 절 응원해 주는 분들이 '발전했다'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끔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유하 어릴 때부터 팬이었는데 이렇게 잘 됐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다만 그 시기가 너무 급하지 않게 천천히 왔으면 해요."

스스로도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진솔한 고백에 '반짝!' 하고 빛나는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이 건강한 마인드와 트렌디한 음악, 독창적인 음색까지 3분을 꽉 채워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얼마나 아쉬울 뻔했나. 솔로로 만나서 더 반가운 유하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