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기숙사 배경 신선했지만 다양성과 공감대 확보 미흡
흘러간 트렌드 되살리기엔 부족했던 시트콤 '지구망'
외국인 기숙사라는 배경으로 신선함을 강조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철 지난 장르가 된 시트콤을 재부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넷플릭스가 선보인 오리지널 시리즈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이하 '지구망')는 십여 년 만에 부활한 청춘 시트콤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실질적 다양성 추구와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외국인 기숙사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린 '지구망'은 한국 외에도 미국, 스웨덴, 태국, 호주,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표면적으로는 다양성을 추구한 듯 보인다.

하지만 한국 국적의 학생들보다 더 '한국인스러운' 이들의 모습을 보는 단편적인 재미 외에는 이들의 국적과 연계된 에피소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청춘, 현실에 치여 사는 청춘,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청춘 등 기존 청춘 시트콤에 등장해왔던 인물의 유형, 연애 혹은 우정을 둘러싼 그들의 관계는 그대로 반복된다.

흘러간 트렌드 되살리기엔 부족했던 시트콤 '지구망'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들어와서 살지만 서로 다른 문화로 인해 갈등을 빚지 않는다"며 "등장인물 모두가 한국인 대학생이었다고 해도 생길 법한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처럼 생각하는 모습들이 우습긴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를 주는 건지 알기 어렵다"고 생각을 밝혔다.

비록 등장인물들의 국적 외에도 중고물품 매매, 배달 혹은 만남 애플리케이션(앱), 인공지능(AI) 등의 소재를 활용해 새로움을 주고자 한 시도도 있었지만 과거 '논스톱' 시리즈에서 본 듯한 이야기의 기시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논스톱' 시리즈를 연출한 권익준 PD와 '하이킥' 시리즈를 만든 김정식 PD가 연출을 맡았지만, 과거 대표작 이상의 매력은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이외에도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주요 인물이 외국 국적이라는 설정이,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지나치게 한국화된 인물들이 공감대 형성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살만한 인물로는 한국인 대학생 박세완(박세완 분)이 있지만, 그 또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했을뿐더러 매력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의 기숙사 규칙 위반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거짓말까지 하며 제이미(신현승)에게 새 휴대폰값을 받아내려는 세완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애정을 갖기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극 초반 삶에서 아무런 즐거움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세완의 모습은 지나치게 객체화된, 청년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동정 어린 시선이 느껴질 뿐 당사자인 20·30세대가 공감하기엔 어려운 설정이다.

흘러간 트렌드 되살리기엔 부족했던 시트콤 '지구망'
하지만 '지구망'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시트콤이 성공하기 어려운 흐름 탓도 있다.

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시트콤은 온 가족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였지만, 지금의 위상은 그렇지 않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시트콤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며 "드라마에도 일종의 유행이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작품이 장르극의 특성을 가지고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통 시트콤의 입지는 좁아진 데 반해 SBS TV 월화드라마 '라켓소년단',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등 시트콤적 요소가 녹아든 드라마가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수 평론가는 "시트콤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더 좋은 조건에서 질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기에 시트콤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며 국내 시트콤의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웃음에 대한 고민과 전문 작가 육성 등으로 시트콤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