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작…"나무들 뿌리 뽑히고 잘려 나가"

최근 한국 사회가 부동산 이슈로 들썩이는 가운데 아파트 재건축 사업 뒤 사라진 가치들을 들여다본 다큐멘터리가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봉명주공' 감독 "아파트 재건축에 사라져 가는 것들 되돌아봐"
다큐멘터리 '봉명주공'은 충북 청주 흥덕구 봉명동에 1·2단지로 지어진 주공아파트가 재개발에 돌입하면서 잘려 나간 나무들, 떠난 주민들을 담담하게 가만히 들여다본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봉명주공'의 김기성(42) 감독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봉명주공을 가게 됐다"며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몇 번 찾아가다가 이곳을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어 "재개발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부동산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 동네 자체가 가진 풍경이나 환경,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1980년에 지어진 이 주공아파트는 청주의 1세대 아파트로 단지마다 500여 세대가 거주했다.

2008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시공사 선정 등에 어려움을 겪다가 2019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재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지금은 유명 브랜드 아파트 분양이 예정돼 있다.

'봉명주공' 감독 "아파트 재건축에 사라져 가는 것들 되돌아봐"
김 감독은 "봉명주공에는 유독 나무들이 많았다.

아파트에 살던 주민들이 모과 등 열매 나무들을 많이 심었다고 했다.

오래된 큰 버드나무도 있었는데 당산나무(마을 지킴이로서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모셔지는 신격화된 나무) 같았다"며 "재건축이 되면 이 나무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어 "알아보니 옮겨지는 나무는 없고 다 베어진다고 했다.

공사를 할 때 나무가 없어야 수월하니 나무 기둥을 잘라내고, 땅에 남은 뿌리는 긁어냈다"며 "나무들이 아무렇지 않게 순식간에 숙련된 기술로 잘려 나가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마치 사람 뼈가 부러지는 것처럼 편치 않게 들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윙윙거리는 전기톱 소리에 힘없이 쓰러지는 나무들이 담겼다.

건축 더미 아래에 깔린 장미 덩굴이 여전히 빨갛게 빛났고, 키 큰 나무 사이에 한 아름 폈던 흰 목련이 짓밟혀 갈색으로 변한 채 바닥을 뒹굴었다.

'봉명주공' 감독 "아파트 재건축에 사라져 가는 것들 되돌아봐"
사라진 것은 나무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이 어울려 지내던 모습도 희미해졌다.

고무대야 주변에 둘러앉아 김장하며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모습은 사진으로만 남았다.

다른 곳으로 이사한 주민들은 예전 생활을 그리워했다.

"봉명주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층 아파트와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5층짜리 건물도 있었지만, 1∼2층 연립주택도 함께 있는 구조로 거기 살던 분들은 이웃과 허물없이 왕래했다고 해요.

아파트라는 것이 개인주의 생활을 대변하는데 봉명주공은 달랐어요.

"
김 감독은 "재건축이나 도시개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테고 이를 막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부동산에 대해 아파트 가격과 같은 경제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환경, 공동체 등 여러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 같다"며 "빠르게 발전된 기술에 따른 변화를 맹목적으로 좇아가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과거에 있는 것들을 한 번쯤 돌아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명주공'은 지난 3일 개막해 9일까지 열리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두 차례(5·8일) 극장 상영되며, 디지컬상영관(http://seff.kr/digital-cinema)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봉명주공' 감독 "아파트 재건축에 사라져 가는 것들 되돌아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