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감독의 첫 범죄오락물…오는 26일 개봉

땅 아래 묻힌 파이프라인을 타고 흐르는 기름을 훔치기 위해 도유꾼 여섯 명이 모였다.

땅굴 파는 도유꾼들의 의기투합…영화 '파이프라인'
영화 '파이프라인'은 국가가 관리하는 송유관을 통해 기름을 빼돌리는 도유 범죄를 다룬다.

도유 사건이 한국 영화의 주된 소재로 다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에 석유를 수송하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는 업계 최고의 천공 기술자 '핀돌이'(서인국)는 수천억 리터(ℓ)에 달하는 기름을 빼돌리려는 정유 사업가 '건우'(이수혁)가 짠 거대한 판에 뛰어들게 된다.

그런데 핀돌이를 보조하기 위해 모인 멤버들은 오합지졸이 따로 없다.

어딘가 모자라 보일 정도로 순박한 괴력의 인간 굴착기 '큰삽'(태항호)과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땅속 지리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지만 큰 병을 앓고 있는 '나과장'(유승목)은 짠내를 폴폴 풍긴다.

구멍 난 송유관에 새로운 관을 연결해 기름이 흘러가는 길을 돌리는 용접공 '접새'(음문석)는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경찰이 들이닥치는 비상 상황을 감시하고 알리는 '카운터'(배다빈)는 까칠하다.

여기에 도유꾼들을 잡겠다고 혈안이 돼 있지만 허술한 순경 만식(배유람)까지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의 작업은 전라도, 경상도로 석유를 보내는 호남선과 경부선 두 개의 송유관이 마주한 지역에 있는 한 허름한 관광호텔에서 벌어진다.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이 스케일 큰 범죄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삽과 곡괭이, 드릴 등 장비는 투박하고, 시간 내 땅굴을 파는 것 외에 현란한 작전은 없다.

땅굴 파는 도유꾼들의 의기투합…영화 '파이프라인'
한정된 제작비로 블록버스터를 따라가려고 애쓰기보다는 어설프고 부족한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삼으며 정면 돌파한다.

영화는 핀돌이를 비롯해 팀원들 각자의 사연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치밀하게 짜인 범죄를 스릴감 있게 끌고 간다기보다는 인물들 간 유대감과 이들의 화합에서 카타르시스를 찾으려 한다.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빌런(악당)도 등장시킨다.

돈 외에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우는 폭력성을 드러내며 핀돌이를 압박한다.

수세에 몰린 도유꾼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물리적 힘이나 수에서나 열세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드라마 '고교처세왕',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서인국과 이수혁은 밀고 당기며 대결 구도를 완성한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끌고 간다.

'파이프라인'은 유하 감독이 시도한 첫 범죄오락물이란 점에서 눈길을 산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쌍화점'(2008) 등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유 감독도 "이름을 가리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영화"라고 말했을 정도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우울증이 많이 호전될 정도로 유쾌했다는 유하 감독은 "나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며 "도둑들이 어떻게 기발하게 기름을 빼돌리는가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는 아니다.

생면부지의 도둑들이 어떻게 서로 마음을 열고, 한 팀이 돼서 더 큰 악을 때려잡는 팀플레이에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오는 26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 15세 이상 관람가.

땅굴 파는 도유꾼들의 의기투합…영화 '파이프라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