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의 솔로 정규앨범…"나를 가둔 제약 벗고 자유롭고 편안해져"
이이언 "들어서 좋은 것…음악의 그 본질에 집중하게 됐죠"
싱어송라이터 이이언(eAeon)은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물과 같은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가 소리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뒤틀어 축조해낸 슬픔의 세계는 늘 낯선 아름다움을 뿜어내곤 했다.

그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정규앨범 'Fragile'(프래절)에서, 그 아름다움은 미처 탐미할 겨를도 없이 마음에 밀려 들어온다.

첫 트랙 '그러지 마'부터다.

"그러지 마 떠나지 마 / 우리의 전부를 버리지 마…" 이이언과 방탄소년단 RM이 함께 읊조릴 때 듣는 이 역시 파도에 휩쓸리듯 무방비가 된다.

'Fragile'은 밴드 '못'과 '나이트오프' 등으로도 활동해온 그가 2012년 솔로 1집 'Guilt-Free'(길트-프리) 이후 9년 만에 선보인 솔로 정규앨범. 많은 것이 이전과는 달라진 음반이다.

최근 전화로 만난 이이언은 "솔로 1집이 정교하고 흔히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앨범은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를 중심에 두고 그 주위에 다른 것들을 배치했다"며 "상대적으로 쉽게 들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건축자재'로 기성품을 사용하는 걸 꺼렸어요.

사운드도 하나하나 모두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남이 쓸 것 같은 소리는 일부러 피했죠. 코드 진행도 가능하면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더 해보려고 했고요.

이번에는 '레디메이드' 적인 느낌이 나는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요.

우리가 어떤 음악에서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한 소리들, 전형성을 가진 소리들을 많이 썼어요.

"
새로운 소리를 집요하게 좇던 그는 정신적 고통의 시간을 거치며 자신을 가뒀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는 2019년 공황장애를 겪으며 9개월 정도 음악을 쉬었다.

회의감에 시달리며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음악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시점"이 찾아왔다.

지인을 통해 의뢰받은, 평소 하던 방식과 전혀 다른 작업이 "신선한 자극"이 됐다.

"예전에 천착했던 까다롭고 엄격한 방식이 아니지만 이렇게 즐겁게 음악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한 음악들이 지금 2집에 들어 있어요.

"
이이언 "들어서 좋은 것…음악의 그 본질에 집중하게 됐죠"
그는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 뒤로 작업이 실제로 너무 잘 된다.

자유롭고 편안하다"며 "음악의 본질에 더 집중하게 됐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본질이 무엇인지 묻자 명료한 정의를 내놨다.

"이런저런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들어서 좋은 것이 음악인 것 같아요.

흔하지 않은 새로움도 물론 그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그것이 곧 음악의 본질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힘든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화두는 인간 영혼의 연약함이었다.

'연약한'이라는 뜻의 'Fragile'을 거의 망설임 없이 제목으로 정하게 된 이유다.

그는 "이번 앨범의 주제는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상처받은 마음, 연약함을 깨달아버린 자신과 함께 그것을 계속 다잡고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첫 곡이자 타이틀곡 '그러지 마'는 방탄소년단 RM의 참여로도 화제가 됐다.

월드와이드 아이튠즈 송 차트와 아이튠즈 뮤직비디오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세계에서 호응이 쏟아진다.

RM의 믹스테이프 '모노.'(mono.)의 '배드바이'(badbye)에 이이언이 피처링하는 등 친분을 이어온 두 사람의 목소리는 이 곡에서도 인상적인 조화를 빚어낸다.

RM 파트 노랫말과 멜로디, 허밍으로 이어지는 아우트로 멜로디도 RM이 직접 작업했다.

이이언은 "이 곡은 악기 연주가 미니멀한 곡"이라며 "계속 반복되면 단조로워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RM씨가 도와주면서 다채로운 색으로 지루하지 않게 곡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 곡을 가장 좋아해 "앨범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시작했으면 하는 곡이기도 했다"고도 말했다.

"RM씨가 완성된 곡을 듣고 정말 좋아했어요.

더 이상 만족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좋은 음악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고요.

너무 진심이 담긴 말을 해줘서 저도 기분이 좋았죠."
이이언 "들어서 좋은 것…음악의 그 본질에 집중하게 됐죠"
현재 힙합·R&B신에서 주목받는 뮤지션들도 참여해 눈길을 끈다.

'눌'(Null)에는 제이클레프(Jclef), '매드 티 파티'(Mad Tea Party)에는 스월비(Swervy)가 피처링해 이이언의 목소리와 신선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이언은 스월비의 피처링에 대해 "랩을 하기 까다로운 비트여서 부탁드리는 게 실례는 아닐까 생각도 들었지만 스월비씨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있었다"며 "앞뒤로 계속 흔들리는 비트 위에서도 곡예처럼 근사하게 랩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Null'을 쓰고서는 피처링 파트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제이클레프가 가장 먼저 떠올라 연락을 했다며 "(피처링 파트를) 들었을 때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싶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번 앨범을 통해 좀 더 자유로운 자리에 다다른 그는 "당분간 지금과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 자유롭게 더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지금까지 안 했던 좀 더 대중적인 느낌의 곡들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앨범의 분위기는 10번 트랙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 그리고 마지막 11번 트랙 '언제까지나 우린'에 이르러 서서히 환해진다.

두 곡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우리'다.

"연약함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위로와 마음을 나누는 연대 같은 것으로 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
공감을 위해 이번 곡들의 가사를 일부러 최대한 직설적으로 쓰기도 했다는 그는 "이 곡들이 마음이 연약해지고 흔들리고 부서지는 많은 순간들에 공감과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