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상영작…공승연 스크린 첫 출연

혼자인 게 편한 사람도 한편으로는 혼자여서 불안할 때가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 홍성은 감독 "무의식 속 불안감 들여다봐"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상영작 '혼자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고, 나 홀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영화는 직장 동료, 옆집 사람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 진아(공승연)의 이야기다.

콜센터 직원인 진아는 혼자 업무를 보고, 밥도 혼자 먹는다.

혼자인 생활은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괴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진아에게 일을 가르쳐야 하는 수습사원과 계속 전화를 해대는 아빠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그러다 옆집 남자가 죽은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혼자서도 잘살고 있는 것 같았던 진아의 삶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영화 속 진아는 "혼자인 게 편하다"고 말하지만, 어딘가 공허해 보인다.

늘 TV를 켜두고 잠들고, 버스에서나 길을 걸을 때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사실 혼자인 것이 두려운 진아의 심리를 잘 반영한다.

영화는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흔한 말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정말 혼자여도 괜찮은지 되묻는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이별로 인한 상실감 등을 회피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만든다.

진아 역시 혼자인 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관계를 맺는데 서툰 인물이다.

죽은 엄마와 어렸을 때 집을 나갔다가 최근에야 집에 돌아온 아빠, 회사에서 업무적으로만 자신을 대했던 선배. 진아는 어쩌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사람들' 홍성은 감독 "무의식 속 불안감 들여다봐"
영화는 홍성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현실을 들춰내는 예리함과 인물의 내면에 깔린 정서를 바라보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홍 감독은 30일 월드 프리미어 상영이 끝난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취 생활을 오래 하면서 혼자 사는 게 체질에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본 고독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며칠 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며 "혼자 사는 불안함, 온전하지 않다는 걱정을 무의식중에 품고 있었지만, 이를 외면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 온전할 방법을 찾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독감과 싸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영화로 만들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실제 영화에는 현대인들이 공감할만한 요소가 많다.

주인공 진아는 사교성이 없긴 하지만, 사회 부적응자는 아니다.

말끔한 차림으로 직장을 다니고, 옆집에 사는 사람과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특히 진아는 고객들의 전화를 감정 없이 처리한다.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고객도, 카드 사용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달라는 고객도 그저 똑같이 매뉴얼대로 대할 뿐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감정 소모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에 공감이 가면서도 씁쓸함이 뒤따른다.

홍 감독은 "진아는 같은 공간에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관심이 없다.

관계를 잘 차단하고, 사람들을 기계처럼 대한다"며 "영화에서 '이런 현실이 과연 괜찮은가'란 물음을 끌고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 홍성은 감독 "무의식 속 불안감 들여다봐"
이번 영화로 스크린 데뷔를 하는 배우 공승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어려운 배역인 진아를 훌륭하게 소화한다.

영화에는 유독 진아의 클로즈업 장면이 많은데 공승연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작품 전체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공승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끌고 가는 영화여서 고민을 많이 했다.

섬세한 감정연기를 요구하는 영화라 걱정이 많았는데 제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준 감독님 덕분에 잘 찍은 것 같다"며 "진아는 혼자 사는 방법을 오해하고 있는 친구다.

선을 긋고 자신을 틀에 가둬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일을 겪으면서 (제대로 된) 혼자 사는 방법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다음 달 8일까지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19일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