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극 영화 '자산어보'서 실존 인물 정약전 역

이준익 감독의 흑백 사극 영화 '자산어보'에서 시대를 앞서간 조선의 학자 정약전으로 분한 설경구는 첫 사극이었지만 화면 안에서도, 밖에서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설경구 "촬영장에 가기 전 땀 흘리며 힘 빼고 연기"
25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앵글 안에서 배우들과 놀자, 생각했다"고 했다.

"실존 인물을 그 이름 그대로 연기하는 건 부담스럽죠. '내가 정약전이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섬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놀아보자' 했죠. 제가 통달하지 않았는데 통달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고, 그렇게 보였다면 대본에 충실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었던 거고요.

"
'자산어보' 이전에도 몇 번의 사극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소원'으로 인연을 맺은 이준익 감독과 다시 한번 꼭 작업을 하고 싶었기에 선택했을 뿐, '자산어보'가 처음부터 완전히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설경구는 "특이하기는 한데 어류 이야기가 막 끌리는 제목은 아니었다"며 "처음에는 약전의 대사 위주로 읽으며 전체를 보지 못했고, 두 번 세 번 다시 읽으면서 젖어 들어 어느새 마음이 움직이고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정약전은 양반도 상놈도 임금도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진 급진적인 사람이었고, 그런 생각을 썼다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니 '자산어보' 같은 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또 그런 수평적 사고를 가졌지만 흑산도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나서야 실천할 수 있었고, 동시에 태생적으로 양반의 한계는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죠."
설경구 "촬영장에 가기 전 땀 흘리며 힘 빼고 연기"
설경구는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수염을 붙인 모습이 어울릴까 긴장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낯선 것에 대해 과감하지 못하고 걱정이 많다"며 "처음에는 어떻게 보일까 걱정이 있었지만, 며칠 촬영하다 보니 또 익숙해지고 편해졌다"고 했다.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처음으로 스리피스 수트를 빼입고 올백으로 머리를 넘겼을 때도 처음의 불편함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불한당' 이후 요즘은 스리피스도 잘 입고 머리도 넘긴다"며 웃었다.

"'불한당' 전까지만 해도 조급했었어요.

언제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면서 살았죠. 변성현 감독을 만났을 때 '계단을 밟고 내려가고 싶은데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다'고 얘기하니, '계단으로 내려오게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두 작품밖에 안 찍은 감독이. 그때 믿음이 생겼고, 덕분에 잘 넘겨서 '불한당' 이후 마음도 편해지고 나이도 먹으면서 내려놓고 사는 것 같아요.

전에는 날이 서 있었다면 지금은 날이 무뎌지고, 좋은 것만 보고 싶고 그렇게 바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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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촬영장에 가기 전 땀 흘리며 힘 빼고 연기"
'불한당'은 흥행 성적을 뛰어넘는 뜨거운 팬덤을 만들어내며 설경구에게 배우 인생의 2막을 열어준 작품이 됐다.

"자학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박하사탕' 때는 정말 심했고요.

그때는 그게 그 캐릭터랑 맞는다고 생각했죠. 근데 그 틀 안에서 계속 왔던 것 같아요.

영화도 다르고, 캐릭터도 그렇게 안 불편해도 되는데 계속 주변까지 불편하게 했던 거죠. 센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면 전날부터 그걸 물고 있으면서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나 주변이나.

요즘은 일부러 그 감정에서 벗어나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순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오히려 딴생각을 하려고 주변 사람들과 장난도 치고 하다 보니 더 편해진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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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촬영장에 가기 전 땀 흘리며 힘 빼고 연기"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한양레퍼토리에서 무대 데뷔를 했지만, 배우 인생 1막의 시작은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대학 졸업하고 대학로에 나와 오갈 데 없는 저를 잡아 준 게 김민기 대표였어요.

제가 연기를 보여준 적도 없는데 포스터 붙이고 있는 사람을 보고 '지하철 1호선'을 하자고 하신 거죠. 저에게 엄청난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셨고, 그때부터 배우로서의 길을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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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년을 향해 가는 그를 하루하루 움직이게 하는 건 '땀'이라고 했다.

"촬영이 몇 시에 잡히든 3∼4시간 전에 일어나 땀을 흘립니다.

땀을 빼면서 힘도 빼고 촬영장에 가는데, 촬영이 있든 없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키는 룰이 됐네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