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2집, 세월 건너온 세련된 사운드…유정연 "그때로 돌아가 들어주셨으면"
필라델피아에서 가져온 '보물상자', 27년만에 꺼내다
27년간 묻혀 있던 음악이 세상에 나왔다.

시대를 앞서갔던 사운드를 새로운 세월의 조류가 발견하고 운 좋게도 길어 올렸다.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의 그룹'으로 통하는 아침(Achim)의 2집 이야기다.

최근 서울 강남구 스톰프뮤직에서 만난 아침의 멤버 유정연씨는 "잊고 있던 옛날의 보물상자를 다시 꺼내는 느낌"이라며 "운이 없어 내지 못했던 음반을 다시 꺼내놓을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가 1994년에 녹음한 '아침 2 [필라델피아 세션 1994]' 앨범은 지난달 26일 음원이 공개됐다.

27년 세월을 건너와도 여전히 세련된 팝 재즈와 발라드 넘버가 빼곡하다.

◇"발매 무산 악몽 같았지만…1집 재발매가 전환점 됐죠"
사실 원래 그는 아침 2집을 뒤늦게라도 발매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시 레코딩까지 마쳤지만 음반사가 도산 직전에 몰렸고 아침 2집도 여기에 휘말리면서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역시 경제적으로 괴로운 상황을 겪어야 했다.

"저한테는 악몽 같은 시간이라 그 기억을 다시 돌이키기가 싫었어요.

"
그러나 지난해 전환점이 찾아왔다.

1992년 발표했던 아침 1집 '랜드 오브 모닝 캄'(…Land of Morning Calm)을 LP와 CD로 재발매하게 된 것이다.

이승철, 신승훈, 이상우 등의 작곡가로 활동하던 유정연씨가 보컬을 맡고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씨가 함께 만든 아침 1집은 '사랑했던 기억으로', '숙녀예찬' 등이 사랑받으며 알음알음 명반으로 회자해왔다.

클래식을 전공한 두 사람은 재즈와 팝 요소를 접목해 당시로선 앞서가는, 지금 봐도 세월을 타지 않는 사운드를 빚어냈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시티팝'의 원류로 1990년대 가요가 주목받으면서 아침의 음악도 재조명되자 음반사 사운드트리에서 LP 재발매를 제안했다.

CD는 유정연씨가 설립한 NWA 뮤직에서 재발매됐다.

호응이 있을지 "사실은 반신반의했다"는 1집 재발매 음반은 온라인 음반 사이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잠들어 있던 2집까지 불러냈다.

한참을 찾은 끝에 마스터링 음원이 수록된 DAT(디지털 오디오 테이프)를 찾아내 음반을 제작할 수 있었다.

아침 1집을 기억해온 팬들은 29년 만에 신보를 선물 받게 된 셈이다.

그는 "작년의 상황이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 주는 전환점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당시 1집을 좋아하셨던 분들이 2년만 더 있었으면 바로 2집을 들으셨을 수도 있을 텐데, 그걸 제가 이제야 발표를 하네요.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이 음악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
필라델피아에서 가져온 '보물상자', 27년만에 꺼내다
◇미국 현지 유명 연주자 대거 참여…"음악가로서 정체성 고민도 담겨"
아침이 듀오로 활동한 것은 1집 발매 당시 1년간 남짓. 2집은 유정연씨가 1994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건너가 홀로 만든 앨범이다.

그는 "유명한 가수들에게 곡을 써줄 때는 제 음악이란 느낌이 없었다.

상업적인 걸 배제하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번 해보자, 그렇게 해서 만든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색소포니스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재즈 싱어송라이터 멜로디 가르도 등 미국 유명 음악가들이 거쳐 간 '모닝스타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이뤄졌다.

당시 가요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현지 유명 연주자들이 참여해 디테일이 남다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빌리 조엘의 '리버 오브 드림스'의 베이스를 담당했던 제프 리 존슨, 크로스오버 재즈 그룹 '피시즈 오브 어 드림'의 리더 제임스 로이드,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 아트 브레키 그룹의 베이시스트 찰스 팸브로우….
"연주자들이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녹음하러 왔다가 제가 계속 집요하게 요구하니 '왜 이렇게 주문이 많냐'며 피곤해했어요.

그런데 녹음을 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음악이 좋아지니 저를 '리스펙'하기 시작했어요.

처음과 끝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죠."
그가 작곡해 신승훈 2집에 수록됐던 '가을빛 추억'을 새로운 버전으로 실었고, 인기 작사가 박주연이 노랫말을 쓴 라틴 재즈 스타일의 '낯선 곳으로의 여행', 인트로의 자동응답기 소리가 인상적인 '너를 사랑했던걸' 등 총 8곡이 수록됐다.

마지막 트랙 '프롬 더 비기닝'(From the Beginning)은 2집을 만들 당시 그의 마음이 그대로 노랫말에 담겼다.

"힘에 겨웠던 지난 시간들 속에 / 잃어버린 내 얼굴을 찾아 헤매는 / 지금의 나…"
"음악가로서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다른 가수 곡을) 작곡하고 녹음하고 그렇게 계속 살다가 정신을 차린 거죠. 소모품으로 사는 음악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중심이 돼서 음악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예요.

"
필라델피아에서 가져온 '보물상자', 27년만에 꺼내다
◇작곡가 데뷔 30주년 기념 작업도 준비
아침과 김현철, 빛과소금, 봄여름가을겨울 등 1990년대 음악을 재발견하는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당시 뮤지션들이 추구했던 새로운 음악은 지금 세대에게도 매력적인 '감수성의 보고'다.

이른바 '시티팝' 열풍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유정연씨는 "다들 사운드에 대한 욕심들이 많았다"며 "멜로디나 가사에 포인트를 주고 음악을 한다기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사운드를 하려는 욕구가 컸다"고 말했다.

핑클의 '영원', 장혜진의 '내게로', 해이의 '쥬 뗌므'(Je T'aime) 등을 만들기도 한 그는 2003∼2004년 이후 월드뮤직으로 영역을 옮겼다.

2009년 이후에는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탱고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침 음반 발매와 함께 대중음악으로 돌아와 작곡가로서 30년 커리어를 정리하는 작업도 준비 중이다.

지난 1월에는 '송북 시리즈'의 첫 EP(미니앨범)로 유명 작곡가들의 컬래버레이션 음원과 미공개곡이 담긴 '유정연 송북 00'을 발매했다.

아침 1집 수록곡과 김현철, 빛과 소금의 곡을 새롭게 편곡한 아침 스페셜 음반도 작업해 음원으로 점차 발표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김현철, 빛과소금의 장기호 등과는 "단순한 동료 이상의 '패밀리십'이 있다"고 말했다.

"아침 2집을 작업했을 때처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더 퀄리티 높은 사운드를 할 수 있는 또다른 전환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