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모니카 역 한예리, 윤여정과 모녀 호흡
"선생님 멋진 모습 볼 수 있어 감사"
"오스카? 뭐라도 받으면 좋겠다"
'미나리' 한예리 /사진=판씨네마

'미나리' 한예리 /사진=판씨네마

배우 한예리의 얼굴엔 일상이 묻어있다. 때론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녀같을 때도, 철부지 대학생 같을 때도, 생활에 찌든 원숙한 여성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 무용을 전공하던 한예리는 우연히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신선한 마스크와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 섬세한 연기력으로 미국 평단의 눈도장을 받기에 이른다.
한예리에게 '미나리'는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다. 대선배 윤여정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할 일이었다고 했다.

영화 '미나리'는 80년대 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평범하고도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만의 농장을 만드는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과 생계를 위해 익숙치 않은 병아리 감별사 일을 시작한 엄마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장난꾸러기 막내 데이빗(앨런김)이 한국에서 미나리씨를 가지고 온 할머니 순자(윤여정)와 묘한 화음을 이루며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23일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에서 한예리는 윤여정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존경심을 드러냈다. 한예리와 윤여정은 미국 촬영기간 내내 서로를 의지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현장에서 윤여정 선생님은 '우리 둘 뿐'이라고 말하시며 허투루 우리를 캐스팅 한 게 아니라는 모습을 보여줘야 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윤여정에 대해 "선생님이 멋지게 해내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내가 언제 작품에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고, 배우 윤여정 인간 윤여정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고 말했다.

한예리는 윤여정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많은 부분을 눈여겨 봤다. 그는 "그 연세인데 모르는 사람들과 외지에서의 촬영인데도 걱정이 없으시더라. 비행기를 타며 겁을 먹기도 했는데 윤여정 선생님을 보며 '사람 다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솔직함도 배웠다"고 털어놨다.

아역 배우인 노엘 케이트 조와 앨런 김과도 금방 친숙해 졌다. 한예리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경험이 많은 친구들이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모니카 엄마' 이러면서 친근하게 다가와줬다"고 했다.

남편 역의 스티븐 연은 매우 '스윗' 했다고. 한예리는 "모르는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아 도와줘라고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영화가 본인의 이야기도 일부 담고 있어 열정적이고 잘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티븐 연과 함께하며 부족한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며 노력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잘 받아줬고 에너지가 좋았다.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 덕에 호흡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미나리' 촬영 현장은 유독 빠듯했다. 한예리는 "25회차에 촬영을 끝냈다.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그 와중에 다들 해낸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날씨였다. 한예리는 "너무 더워서 집중이 안될 정도였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걱정됐다"고 귀띔했다.

영화 촬영을 하며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촬영 후 함께 먹는 식사 시간을 꼽았다. 그는 "거의 매일같이 밥을 먹었다.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큰 위로가 됐고, 우리가 할수 있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되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미나리' 한예리 /사진=판씨네마

'미나리' 한예리 /사진=판씨네마

'미나리'의 연출과 각본은 '문유랑가보'로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후보에 올랐던 정이삭 감독이 맡았다.

촬영 현장에는 정이삭 감독을 응원하는 많은 지원군이 있었다고 한예리는 떠올렸다. 그는 "정 감독의 작품을 응원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도와주러 오셨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고 감독을 사랑하는지, 그 힘이 제게도 오더라. 이 작품이 주는 감정들, 함께 보낸 시간들 때문에 제가 엄청 건강해 진 것 같다. 영화 작업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서 특별한 영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촬영 현장에서 한예리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는 "생각보다 되게 많은 한국인이 있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생활하는 동안 저와 윤여정 선생님을 캐스팅한 분 선생님이 걱정돼서 밥을 해주러 오셨다. 그분이 또 조카분을 불렀다. 번역가도 왔다. 조연출처럼 케어해주는 더글라스도 한국계 미국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이 한국인 몇명으로도 돌아가는 느낌이라 외톨이라는 기분보다 '한국인들 대단한데' 이런 느낌으로 즐겁게 있었다. 불안한 감정이 없어서 빨리 현장에 적응했다. 모니카를 연기하는데 더 도움이 많이 됐다"고 밝혔다.

한예리는 정이삭 감독에 대해 "매 순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주어진 환경과 시간에서 최선을 다해 선택하는 똑똑한 감독이면서도 배우가 안정적인 연기를 할 수 있게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특히 매번 촬영이 끝나고 정 감독이 보여주는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예리는 "현장에 큰 일, 작은 일들이 많은데 '오늘도 무사히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것을 잘 해냈다'는 식의 미소였다. 따뜻했고, 달관한 듯 보였다"고 회상했다.

극중 한예리는 남편의 꿈과 가족의 희망을 지켜내는 엄마 모니카 역을 맡았다. 허허벌판 위 바퀴 달린 트레일러에서 사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컸지만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킨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엄마의 모습을 그려내며 따뜻한 공감과 감동을 안겨준다.

영화 '미나리'는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 수상한 후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및 미국배우조합상(SAG)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 74관왕 157개 노미네이트를 기록해 오스카 유력 후보작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예리는 미 영화 전문지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예상 후보까지 선정됐고, 직접 부른 OST 'Rain Song'을 통해 주제가상 부문 1차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상태다.

첫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아주 성공적인 성과다. 한예리는 "일단 뭐라도 되면 엄청 좋을 것 같다. 정 감독께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첫번째다. 각복, 감독, 작품상이든. 물론 감독은 욕심내지 않을 것 같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아울러 미국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 윤여정에 대해서도 "제가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하면 '됐다'고 하신다. 진짜 큰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고생한 만큼 보람된 일이 생겼으면 하면서도, 안 줘도 충분히 사랑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미나리'는 오는 3월 3일 국내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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