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인표'에서 갇혀 있던 이미지 탈피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벼락스타가 된 27살의 배우 차인표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자신의 과거를 패러디하는 영화 '차인표'에서 다시 그 검지 손가락을 흔들다, 잘린다.

차인표 "손가락 잘리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 느꼈다"
20년 넘게 갇혀 있던 자신의 이미지를 깨부수는 그 장면을 통해 차인표는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지난 1일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가 공개된 뒤 7일 화상으로 만난 차인표는 두 작품을 인생의 행운이라고 했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단역 배우였던 저는 벼락스타가 됐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으니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행운이었죠. 그 행운을 잘 누린 대가로 남은 이미지가 20년 넘게 제 삶을 구속하기도 했고요.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을 때 찾아온 또 다른 행운이 '차인표'인 거죠. 이 영화를 기점으로 이전의 이미지는 잊고 자유로운 영혼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영화는 한때 잘나갔던 배우 '차인표'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비어있는 여고 샤워실에서 씻다가 건물이 무너지며 갇히는 이야기다.

알몸을 드러낼 수 없다며 119 구조를 거부하는 '차인표'와 어떻게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차인표'를 건물 잔해 속에서 빼내야 하는 매니저 김아람(조달환 분)이 '차인표'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차인표 "손가락 잘리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 느꼈다"
배우 차인표의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쓴 데서 알 수 있듯, 영화 속 배우 '차인표'는 실제 배우 차인표의 재현이다.

현재 하는 일은 저가 스포츠 의류 모델이지만,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색소폰을 불었던 과거 드라마 속 재벌 2세 역할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차인표'는 혼자 샤워를 하면서도 여전히 거울을 보고 검지 손가락을 흔든다.

차인표는 "찍을 때도 민망했는데 역시 민망하게 나오는구나 싶었다.

다시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또 민망해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자신을 희화화할 수밖에 없는 영화에 출연해 최선을 다해 연기한 배우 차인표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차인표는 "평점을 매기는 별이 한 개부터 다섯 개가 있으니 골고루 나올 것 같은데, 한 개 아니면 다섯 개더라"며 "특히 젊은 관객들에게 접근할 방법 자체가 없는데 젊은 분들이 많이 봐주시고 피드백을 받아 기쁘다"고 했다.

또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코믹한 부분이 약간 덜 했던 것 같다"면서도 "그냥 코미디가 아닌, 틀에서 벗어나야 하는 존재에 대해 성찰하는 부분이 있는 영화라고 느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코미디인 줄 알고 봤는데 보고 나니 앞으로 삶의 태도가 달라질 것 같다'는 한 남성 관객의 리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차인표 "손가락 잘리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 느꼈다"
그는 "극 중에서도 나 자신도 배우가 연기를 해야 배우인데 연기를 안 하고 진정성만 외쳤던 게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이었던 것 같다"며 이제는 '스타가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보람'을 이야기했다.

"대중이 저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이 바로 제가 가진 고정관념이었어요.

대중의 기호에 맞도록 끊임없이 통제하고 조련하고 인내하면서, 또 안정된 그 상태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살아온 거죠. 어떤 이미지를 지키고 싶은 건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망 때문인데, 이제 틀 안에서 안주했던 이미지를 통해 얻고 싶은 게 없어요.

스타로서 받는 대중의 관심보다는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 재미있는 작품을 하고 싶고 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