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바스 (사진=방송캡처)


UHD KBS 드라마스페셜 2020의 두 번째 작품 '크레바스'가 균열에 빠져버린 윤세아와 지승현의 이야기로, 안방극장에 빠져나올 수 없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지난 14일 방송된 '크레바스'는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이란 뜻의 '크레바스'에 갇혀버린 수민(윤세아)과 상현(지승현)의 위기를 섬세하게 그려나갔다. 균열이 만든 감정의 소용돌이, 그 안에서 다른 선택을 내린 두 남녀의 멜로는 스릴러적 장치가 더해져 치명적 전개를 이어나갔고, 이는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 같은 드라마”란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었다. 출구 없이 막힌 엔딩도, 주인공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해피엔딩도 아니었지만, 드라마가 끝나고도 사라지지 않는 여운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방송 전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나라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생각해보게 됐다. 그렇게 현실과 맞닿아있다”던 배우들의 전언이 실감나던 순간이었다.

잘 나가는 남편과 유학 간 아들, 수민의 삶은 모자란 것 하나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여자는 커녕 엄마도 아니라고 느끼고 있는 수민은 그저 버티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 속에 아내가 죽은 후, 수민의 남편 진우(김형묵)의 도움을 받아 직장을 구하고 갓난 아이와 함께 서울에 정착한 상현이 들어왔다. 남편과 함께 집들이에 갔다,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엄마 몫까지 다 해줄게”라며 딸 앞에서 흐느끼는 그를 보며 연민을 느낀 것. 사실 상현이 지금은 수민에게 ‘형수’라 부르고 있지만, 그 이전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다. 아직도 딸 아이 돌보는 게 서툴러 옷이 작아진 것도 모르고 있던 그가 “염치 없지만, 가끔 내가 등신처럼 모를 때 이렇게 알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수민은 상현과 그의 딸 다은에게 신경 쓰기 시작했다. 상현의 퇴근이 늦어지면 대신 아이를 돌보고, 목욕을 시키고, 재웠다. 마치 아내처럼, 엄마처럼 말이다. 수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로 인해 활력을 찾았고, 상현은 그녀에게 위로를 받고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엔 묘한 감정이 싹텄다. 수민은 죽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 혼자 남은 두려움을 토로하며 “나 혼자 어떡해?”라며 우는 상현을 “내가 있잖아. 내가 있을게”라며 안아줬다. 상현은 “그날은 죄송했습니다. 형수님”이라며 그날의 일을 부정하기도 했지만, “우리 사이가 먼저였다”는 수민에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결국 묻혀뒀던 과거까지 한 데 얽혀 주체할 수 없이 서로에게 다가선 두 사람은 입을 맞췄고, 애틋한 감정을 공유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었다. 진우가 살림을 돌보지 않고, 자신을 꾸미는 데 신경 쓰는 수민을 보며 남자가 생겼다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 이 의심은 수민과 상현의 관계에 균열을 만들었다. 상현은 “형이 너 의심해. 당분간 여기 오면 안 될 것 같아”라며 선을 그었지만, 이제 더 이상 남편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수민은 진우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하고 말았다.

상현의 마음은 수민의 그것과 같은 곳을 보지 않았다. 다은이 빼고 인생에 남길 사람이 딱 하나라면, ‘진우 형’을 선택하겠다는 것. 상현도 진심이라 생각했던 수민의 마음을 할퀴고 간 상처는 집착으로 드러났다. 말도 없이 다은이를 데리고 사라진 수민에게 결국 상현은 폭발했다. “너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라며 애원하는 수민을 뿌리치고 떠났다.

수민과 상현은 헤어졌고, 두 사람의 비밀은 이대로 묻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형 이혼했다”며 상현의 집을 찾은 진우는 그의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게 됐고, 수민이 사랑한다는 사람의 정체를 알아챘다. 사진 속 아내의 블라우스가 언젠가부터 수민이 자주 입던 그것과 같았다. 아프고 잔인한 진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9개월 후, 상현과도 진우와도 헤어진 수민은 여전히 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 흐릿한 뒷모습 위로 “빙하 위의 갈라진 틈, 크레바스. 억겹의 시간이 만든 함정이다”라는 내레이션이 흘렀다. 헤어나오기 어려운 씁쓸함과 짙은 여운을 남긴 엔딩이었다.

한편 ‘크레바스’에 이어, UHD KBS 드라마스페셜 2020 세 번째 작품 '나의 가해자에게'는 오는 19일 목요일 오후 10시 40분 KBS 2TV에서 방송된다.

신지원 한경닷컴 연예·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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