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영화제서 호평…'남매의 여름밤' 연출한 윤담비 감독

가족 영화는 많고 많다.

첫 장편 영화를 만드는 신인 감독 역시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가족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두려운 마음에 요즘 잘 나가는 장르 영화나 경향을 따라 블랙코미디를 쓰기 시작했다.

겉도는 이야기에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는 반응에 관습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자신을 돌아봤고, 결국 등장인물의 이름만 같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화도, 악의도 없이 솔직하게 담은 가족의 이야기'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많은 관객을 만나며 유럽과 북미의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쓰고 연출한 윤담비(30) 감독은 "영화가 이렇게 알려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소수에게 깊이 다가가는 작품이 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고, 영화가 자기 길을 가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남매의 여름밤'은 올해 1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밝은미래상을 받았고, 최근 뉴욕아시안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소식을 알렸다.

로테르담 영화제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잡혀 있던 해외 영화제 참석 일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미화도 악의도 없는 가족이야기…영화가 자기길을 가고 있네요"

광주 출신인 윤 감독은 어릴 적 광주의 유명 단관 극장인 광주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답답함을 해소하고 다른 삶을 체험했다고 했다.

그는 "고3 2학기가 되어서야 진로 고민을 시작했고, 아무런 준비 없이 지원한 연극영화과에 덜컥 붙으면서 '운명'이 시작됐다"며 웃었다.

영화는 여름 방학 동안 할아버지의 오래된 이층 양옥집에서 지내게 된 옥주와 동주 남매의 가족 이야기다.

잔잔하고 예쁘기만 할 것 같은 영화에는 현대 사회, 요즘 가족의 문제가 차곡차곡 채워져 있고, 이를 바라보고 겪어내며 성장하는 사춘기 소녀 옥주(최정운 분)의 시선과 감정이 섬세하게 담겼다.

윤 감독은 "착한 가족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어른 남매(아빠와 고모)의 남루한 현실과 무책임하거나 비정해 보이는 선택을 포함해 미성숙한 어른들도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면서 자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친구가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었어요.

자기 집의 치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는데 저는 얘기를 못 했어요.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 부끄러웠고, 미안함이 남았죠. 그런 치부는 모두 갖고 있을 텐데 가족은 내밀한 공동체이다 보니 공유되지 않는 것들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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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도 악의도 없는 가족이야기…영화가 자기길을 가고 있네요"

영화를 만든 또 다른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낡은 이층 양옥집이다.

두 달에 걸쳐 찾아낸 인천의 이 집은 시나리오까지 바꿨다.

실제 자식을 키워 출가시킨 노부부가 사는 집은 1970년대 유행한 '불란서 주택'이다.

소파나 텔레비전 등 가구의 위치나 방향을 조금 바꾸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세간살이 등이 그대로 영화에 담겼다.

애초 시나리오에서 혼자 사는 할아버지의 집 마당은 관리가 되지 않아 황폐한 설정이었지만, 원래의 풍성한 녹색 텃밭을 그대로 유지해 영화 속 다시 모인 가족들이 고추와 방울토마토, 포도 등 여름 먹거리들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오래된 재봉틀은 옥주가 자신의 공간으로 삼는 2층에서 할머니를 추억하는 소품으로,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집안 계단에 설치된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문은 옥주와 어린 남동생 동주, 할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벽을 만들거나 허물어뜨리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윤 감독은 첫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선보이기 위해 이번 작품을 함께 한 김기현 촬영감독과 함께 제작사를 만들었다.

'남매의 여름밤'에서 착안해 오누(오누이의 준말) 필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차기작 준비하라는 이야기는 부산영화제 때부터 너무 많이 들었는데 후반 일정들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어요.

88 서울올림픽을 생각하고 있긴 한데, 사건보다는 한 시대의 공기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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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도 악의도 없는 가족이야기…영화가 자기길을 가고 있네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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