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쉘'(bombshell) - 폭탄선언, 몹시 충격적인 일, 섹시하고 매력적인 금발미녀.
한 단어가 가진 사전적 의미들이 영화 한 편과 이리 똑떨어질 수 있을까.

게다가 영화는 단어에 맞춰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동시대의 실존 인물들이 불과 몇 년 전 치러낸 싸움과 승리의 이야기이기에 더 짜릿할 수밖에 없다.

실화라서 더 짜릿한 영화 '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미국의 거대 보수 언론인 폭스 뉴스의 여성 간판 앵커 그레천 칼슨과 메긴 켈리는 보수 권력의 상징인 두 거물, 로저 에일스 폭스 회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

영화 '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이 두 여성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승리를 실제 뉴스처럼 박진감 넘치게 펼쳐 보인다.

특수 분장을 통해 메긴 켈리로 완벽하게 변신한 샬리즈 세런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24시간 분주하게 돌아가는 폭스 뉴스 건물 각 층의 구성원들을 소개하는 오프닝은 관객을 거대 미디어 그룹의 은밀한 내부로, 영화 속으로 신속하게 안내한다.

2015년 대선 캠페인 당시 거침없는 막말로 인기몰이를 하던 트럼프의 여성 혐오 발언들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메긴 켈리는 후보들을 제치고 화제의 중심에 선다.

로저 에일스의 성적 요구를 거부해 좌천당한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 분)은 계약이 갱신되지 않고 끝난 직후 그를 성희롱으로 고소하고, 폭스의 새 얼굴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은 신입 '케일라'(마고 로비 분)는 로저 에일스의 방으로 향한다.

교류가 없던 세 여성이 로저 에일스의 방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마주하는 순간에는 그야말로 짜릿한 전류가 흐른다.

실화라서 더 짜릿한 영화 '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마고 로비가 연기한 케일라는 실제 인물들 사이에 등장하는 가상의 캐릭터로, 영화에 드라마를 더한다.

열정이 넘치지만 순진무구한 케일라는 그레천과 메긴이, 그리고 다른 수많은 여성이 당하고도 숨겨왔던 일들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마고 로비는 미국 최고 코미디 프로그램 'SNL'의 간판 크루인 케이트 맥키넌과 합을 맞춰 영화의 웃음을 담당하기도 한다.

맥키넌은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레즈비언이지만 생계를 위해 정체성을 숨기고 폭스에서 일하는 '제스' 역을 맡아 신입인 케일라에게 '유해 환경'인 폭스의 생태계와 생존 전략을 신랄하게 전수한다.

실화라서 더 짜릿한 영화 '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트럼프가 대선 후보 토론회나 트위터 등 공적인 공간에서 내뱉는 말들은 저질스럽고, 로저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 직원들을 사적인 공간인 사무실로 불러 저지르는 일들은 추접스럽지만, 당하는 자에서 싸우는 자가 된 여성들의 태도는 단단하다.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고 했던 미셸 오바마의 말 그대로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은 가해자나 그가 저지른 잘못을 말하는 대신, 피해자가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대사는 영화 밖 현실에서 영화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다시 영화 밖으로 묵직하게 뻗어 나온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상과 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분장상을 받았다.

7월 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