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오가는 이방인 역할…"역할 통해 치유받아"

'프랑스여자' 김호정 "나는 낯선 얼굴의 배우, 항상 열려있어"

프랑스 파리와 한국 서울의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떠도는 여자. 그 경계에서 혼란과 낯선 감정을 느끼는 여자. 배우 김호정(52)이 섬세하게 그려낸 '프랑스여자' 미라의 얼굴이다.

3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김호정은 "미라를 통해 내 삶에도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영화 '프랑스여자'에서 김호정이 연기한 미라는 젊은 시절 배우를 꿈꿨지만, 그 꿈을 접고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해 파리에 정착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 20년 전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재회하면서 과거의 불확실한 기억과 현재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이 혼란의 퍼즐 조각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야 맞춰진다.

"사람이 죽어갈 때 공포를 느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의식 속을 돌고 있는 여러 생각의 표출인 거죠. 미라 앞에 내 죄책감의 대상이었던 인물이 나타나고, 용서받은 느낌까지 받게 되죠. 이런 것들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
미라의 혼란스러운 기억과 감정 속에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회한, 옛 친구인 영은(김지영 분), 성우(김영민), 해란(류아벨)과의 기억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현재의 미라가 20대의 친구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미라의 혼란이 표현된다.

'프랑스여자' 김호정 "나는 낯선 얼굴의 배우, 항상 열려있어"

"미라는 혼란을 겪지만, 그 혼란을 상상하지 않고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죠. (미라를 좋아했던) 어린 성우를 만나는 것은 그냥 지금의 제 모습인 거예요.

상상의 연기를 한다고 하면 연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거든요.

다만 과거 행동에 대해서는 관객을 설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후회하는 것을 표현할 뿐이죠."
영화의 연극적인 연출과 다소 난해한 내용에 대해서는 "등장인물들이 연극 분야에 종사하는 특정한 직업이라 생소한 부분이 있다"며 "영화에 많이 나오는 연극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냥 흘려버리고 영화를 본다면 마지막에 모두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 오래 체류한 적도, 프랑스어를 할 줄도 몰랐지만, 김호정은 미라를 만나 프랑스 여자 같은 분위기를 완성해냈다.

"저는 예전에 독일에서 지냈던 경험은 있어요.

영화 '나비'(2002)에서는 독일 교포를 연기하기도 했었고요.

이번엔 프랑스어로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출연 결정을 하자마자 프랑스어 선생님 붙여달라고 해서 레슨을 받았죠.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을 연구하기도 했고요.

미라의 모델이 된 분이 계신데 그분을 만나봤더니 제가 연구했던 것과 비슷하셔서 안심됐죠."
1991년 연극으로 데뷔해 연극,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20대 때 막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배우의 꿈에 미쳐있었다"는 김호정은 미라의 이루지 못한 꿈과 그에 대한 열망에 크게 공감했다고 털어놨다.

"'프랑스여자'를 할 때는 이미 나이도 꽤 들었고 제 또래 배우들이 엄마 역할을 많이 하는 걸 보면서 '나의 여성성이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면서 이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어떤 배우가 돼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동시에 우울했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라처럼 '내가 잘살고 있나'를 늘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
"고정된 이미지가 없고 낯선 얼굴이라 작가주의 감독들이 나를 많이 찾는 것 같다"는 김호정은 "상업 영화도 당연히 하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상업영화 '보고타'를 콜롬비아에서 촬영하다가 현지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중단하고 최근 귀국했다.

"큰 예산의 상업 영화는 주로 남자들이 주연을 맡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주도적이진 않아요.

그렇지만 전 항상 열려있어요.

엄마 역할을 맡는다고 해도 작품이 잘 나오면 그만큼 행복한 건 없죠."
'프랑스여자' 김호정 "나는 낯선 얼굴의 배우, 항상 열려있어"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