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도극장' 전지희 감독 "절박한 상황에서 쓴 작품"
늦깎이 감독이 청춘에게 전하는 위로

영화 '국도극장'은 6년 넘게 서울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사시 제도가 폐지되면서 고향 벌교로 돌아온 기태(이동휘 분)의 인생 한 페이지를 가만히 펼쳐 놓는다.

바닥에 떨어진 것 같은 암울한 상황에서 시작한 페이지는, '더 나은 내일'로 마침표를 찍는다.

영화는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의 제작 지원 프로그램인 전주프로젝트마켓에서 제작과 장비, 로케이션, 자막 제작 등을 지원하는 각종 상을 휩쓸고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에 선정돼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여 주목받았다.

영화제 이후 1년 만에 개봉하게 된 전지희(43)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어서, 안 쓰면 죽을 것 같아서 무작정 쓰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했다.

20대 후반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영상 분야를 전공했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어렸을 적 막연한 꿈이었던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는 것이었다.

뒤늦게 친구가 알려준 전주프로젝트마켓에 시나리오를 출품하고, 명필름랩에 입학한 것이 비슷한 시기였다.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역대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 감독은 작년 영화제를 돌아보며 "축제 분위기에 다들 들떠있고 굉장히 고무돼 있었다.

영화를 만든 것도, 보여드리는 것도 다 처음이어서 얼떨떨하고 정신없었지만 많은 분이 봐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걸 감사하게도 많이 누렸다"고 했다.

개봉은 코로나19와 여러 사정으로 시사회도 없이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하게 됐다.

영화제에서 공개했던 것은 감독판(102분)으로, 추가 편집본이 개봉 버전(92분)으로 함께 선보인다.

전 감독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이고, 많이 기다려서 이렇게라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늦깎이 감독이 청춘에게 전하는 위로

모든 것이 처음인 신인 감독은 현장이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놓긴 했지만, 운도 좋았다.

배우 캐스팅과 그들이 만들어 낸 어울림은 극적인 사건 없는 영화를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캐스팅 후보에 없던 이동휘가 다른 배우에게 간 시나리오를 보고 먼저 하고 싶다고 감독을 수소문해 의사를 전달한 것은 이동휘 스스로 밝힌 이야기다.

오씨 역의 이한위는 서울 출신인 이동휘에게 전라도 사투리 특별 과외를 해줬고, 기태 엄마 역을 맡은 신신애는 시나리오를 손으로 직접 옮겨 적어서 가지고 다닐 정도로 작품에 애정과 이해를 보여줬다.

두 배우는 오랜 경력만큼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대중들에게는 코믹한 이미지가 강렬했던 게 사실. 여전히 '응답하라 1988'의 실없는 동룡이로 남아 있는 이동휘까지 셋이 모이니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동휘마저 캐스팅 이야기를 듣고 "셋이서 추석 특집 핵폭탄 코미디를 하는 것이냐?"고 농담할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한다.

배우들은 걸음걸이로, 뒷모습으로, 표정으로, 눈빛으로 장면의 여백을 꽉꽉 채운다.

늦깎이 감독이 청춘에게 전하는 위로

기태가 일하는 재개봉 상영관 국도극장 내부는 광주에 있는 단관극장인 광주극장에서, 외관은 벌교에 있는 일제강점기 금융조합이었던 근대문화재 건물에서 촬영했다.

이곳에 '흐르는 강물처럼', '박하사탕', '첨밀밀', '봄날은 간다' 등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개봉한 영화들이 손으로 그린 간판으로 걸리는 정경만으로도 아련한 향수가 전해진다.

간판에는 기태를 향한 오씨의 애정과 응원, 관객에게 전하는 감독의 위로가 조금은 티 나게 숨겨져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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