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추천으로 김수환 추기경 어머니역…"아직도 카메라 앞 연기 낯설어"

'저 산 너머' 이항나 "제 마음 따라 연기했죠"
무거운 짐을 이고 행상하러 다녀야 하는 가난한 형편이지만 아들을 올바르게 키우고자 하는 어머니. 아들이 천주의 뜻에 따라 살길 원하는 어머니. 아들에게 신부가 될 것을 권유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일곱살 막둥이 아들이 자신의 마음 밭에 심을 믿음의 씨앗을 키울 수 있게 돕는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화 '저 산 너머'에서 배우 이항나가 연기한 어머니 이야기다.

23일 오후 종로구 소격동에서 만난 이항나는 "처음엔 역할이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어렵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특히 신부가 되라고 하는 장면이 어려웠어요.

어떻게 하면 신앙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고민했죠. 해답이 없고, 연기 기술보다는 제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신부가 되어라'라는 말은 종교적인 의미도 있지만, 이기심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고 아이가 넓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길을 선택하게 하려는 뜻으로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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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물(서중화 마르티나 여사)을 연기한 데 대해선 "책과 자료를 보고 사진도 봤다.

부담도 됐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내 안의 어떤 것이 그분의 어떤 것과 만나 새로운 인물로 탄생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어린 시절 삶을 다뤘고 소년 수환의 조부모가 종교를 이유로 박해받았다는 내용이 그려지지만, 영화는 종교색보다는 소년 수환의 순수한 마음을 따라간다.

'저 산 너머' 이항나 "제 마음 따라 연기했죠"
이항나도 "종교 영화라고 생각했으면 선택할 때 망설였을 것"이라고 했다.

"감독님이 모성과 아이, 엄마와 신, 우리 내면의 아름다운 세계, 그리고 동심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야기했었고, 저 또한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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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지만, 현장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폭염과 싸우는 등 사투를 벌였다.

"생명 위협을 느낄 정도로 더웠어요.

소금을 먹고 촬영하다가 결국 위험해서 중단한 적도 있죠. 물건을 팔러 다닐 때 머리에 인 물건이 너무 무거워서 침을 맞기도 하고,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얼굴에 까만 칠을 하기도 했죠."
이항나는 이 역할을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무교인 가족들이 다 함께 명동성당에 방문한 다음 날 마치 운명처럼 출연 제의를 받았고, 연출을 맡은 최종태 감독은 이항나를 캐스팅한 데 대해 "어떤 감독이 추천해줬다"고 말했다.

그 추천자는 바로 봉준호 감독이었다.

"처음엔 추천자가 누군지 안 가르쳐주시더라고요.

봉준호 감독님이라고 해서 영광이었죠. 봉 감독님이 예전에 제가 연극을 하는 걸 보신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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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 너머' 이항나 "제 마음 따라 연기했죠"
연극 무대에서 연기 경력을 쌓고 연출도 한 이항나는 영화 '변호인'(2013), '4등'(2015), '사바하'(2019), '나를 찾아줘'(2019)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는 기훈(최우식)의 엄마를 연기했다.

"영화 쪽으로 넘어온 지 3~4년 됐는데 그전에는 연출을 활발히 했었어요.

아직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제가 낯설어요.

얼마 안 됐으니까요.

꿈요? 영화에서도 좀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고 또 하고 싶었던 작품을 연출하고 싶어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