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클로젯’에서 퇴마사 경훈 역을 맡은 배우 김남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클로젯’에서 퇴마사 경훈 역을 맡은 배우 김남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유쾌함과 진지함, 차가움과 뜨거움을 넘나드는 배우 김남길. 지난해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연기에 물오른 그가 오는 5일 개봉하는 영화 ‘클로젯’에서 자신의 이 같은 매력을 다시 한 번 내뿜는다. 이 영화는 벽장 속으로 아이들이 사라지는 사건의 비밀을 밝히려는 한 아빠와 퇴마사의 이야기다. 퇴마사 경훈 역을 맡은 김남길은 능글맞다가도 일순간 진지하고 서늘해지는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연기해낸다.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는 그는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현상을 보여주는 것보다 사건의 원인은 사람에 있고, 그걸 감당해내게 하고 치유해주는 것도 사람이라는 데 집중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김남길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0. 김광빈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신인 감독과 작업해야 한다는 걱정은 없었나?
김남길: 시나리오를 읽고 소재가 신선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장르라서 호기심이 생겼다. 또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씨가 제작한다고 해서 관심이 가기도 했다. 신인 감독과 해야 한다는 데는 별다른 두려움은 없었다. 김 감독님을 만났을 때 자신보다 선배인 윤 감독이나 하정우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끌려 다니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이 명쾌하다고 느꼈다.

10. 이번 영화에는 캐스팅된 과정이 궁금하다.
김남길: 당시 드라마 ‘열혈사제’ 촬영이 결정돼 있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다. 윤 감독님과 하정우 씨가 시나리오를 한 번 보라고 했다. 대흥행까진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면 이런 이야기나 이 정도 규모의 영화들이 계속 투자되고 제작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얘길 들으니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그래 좋아! 가자!’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또 내가 친한 사람들이 부탁하면 잘 거절을 못하기도 한다.(웃음)

10. 공포영화는 즐기는 편인가?
김남길: 아예 못 본다. 공포영화로는 어릴 때 ‘오멘’을 본 게 마지막이다. 아직까지도 그걸 본 기억이 남아있다. 스산한 분위기에 음울한 음악이 깔리고 주인공들은 가지 마라고 하는 곳에 가고 하지 말라는 걸 꼭 한다. 안 하면 안 되나.(웃음)

10. 이 영화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영화 아닌가?
김남길: 놀라게 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오컬트 마니아들에겐 조금 순할 수도 있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그게 장점일 수도 있다. 나처럼 공포물을 잘 못 보는 사람들은 조금만 용기내면 볼 수 있기 때문이다.(웃음)

김남길은 이 영화의 특징을 “유럽풍의 세트에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소품과 퇴마의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김남길은 이 영화의 특징을 “유럽풍의 세트에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소품과 퇴마의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장난스럽고 능청스럽던 경훈이 진지하고 무거워진다. 변화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신경 쓴 점은?
김남길: 앞부분에 애써 웃기려는 의도는 없었다. 편안하게 풀어졌던 캐릭터를 뒷부분에서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보여주려 했다. 무당이나 퇴마사도 깐죽거리는 성격을 갖고 있을 수 있고 유쾌할 수도, 어두운 사람일 수도 있다. 극장에서 ‘신과함께’를 볼 수 있고 라면도 먹을 수 있다. 그런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보려고 했다. 시나리오에서는 경훈이 좀 더 무섭게 느껴졌다면 영화로 본 경훈은 조금 더 유쾌했다.

10. 그렇다면 촬영하면서 캐릭터가 좀 더 코믹하게 변한 건가?
김남길: 음…. 웃기다기보다는 좀 더 라이트해졌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니 좀 더 변화의 폭을 줬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는데 너무 오컬트 특유의 톤에서 벗어나면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했을 것 같아서 적정했다고 본다.

10. 퇴마사를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김남길: 주술을 외우는 것. 너무 길어서다.(웃음) 일단 퇴마의식은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나는 이 영화에 맞는, 그리고 극 중 내 캐릭터가 퇴마하는 내용과 비슷한 주술이 있는지 인터넷이나 종교인들, 무속인들을 통해 조사해봤다. 퇴마 내용과 맞는 주술이 있어서 한 달 정도 연습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유럽에서 금기시되는 힌두교 주술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국의 고전 주술들을 이용했다. 긴 내용을 다 사용할 수는 없어서 부분 부분 차용해 짜깁기했다.

10. 긴 주술을 다 외운 건가?
김남길: 주술을 따로 갖고 다니며 외웠는데 앞부분은 촬영 때도 잘 말했다. 그런데 중간에 좀 틀렸다.(웃음) 퇴마 의식이 고조되면 나도 에너지를 끌어올리면서 주술을 외워야 하는데 한 번 꼬이니 그 다음 대사들이 잘 기억이 안 났다. 그래서 아무 얘기나 웅얼웅얼 거렸다.(웃음) 감독님은 내가 연기하는 건 줄 알고 가만히 계시더라. 내 예전 주소도 말하고 친구들 이름도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나중에 후시녹음으로 다시 입혔다. 너무 정확히 주술을 말하면 무속인들이나 종교인들이 보셨을 때 ‘틀렸다’고 하실 수도 있고 종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일부러 조금 뭉개서 말하기도 했다.

10. 주술과 함께하는 손동작(수인)도 독특했는데.
김남길: 애니메이션 ‘나루토’를 좀 참고했다.(웃음)

영화 ‘클로젯’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클로젯’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하정우와 연기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인데 어땠나?
김남길: 현장에서도 밖에서와 비슷했다. 인간 하정우와 배우 하정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웃음에 욕심이 있는 형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 한다. 그러면서 진짜로 웃겨서 웃는 건지 확인해보려고도 한다.(웃음) 배우들 누구나 현장에서 강박감, 압박감 같은 게 있는데 하정우 씨는 그걸 태연하게 해내려고 노력한다. 현장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하기도 하는데 하정우 씨는 영화를 오래해서인지 그 밸런스를 심플하게 조절해냈다.

10. 상원(하정우 분)이 벽장 너머 세계인 이계로 가고 경훈은 상원의 집에서 의식을 이어간다. 빙의한 듯하기도 하고 이계에서 넘어 온 혼령들에 끌려가지 않으려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벽장을 두고 혼자 액션 연기를 한다는 게 촬영장에서는 좀 민망할 수도 있는 일인데.
김남길: 내가 액션 연기를 좋아하니 편할 줄 알았는데 혼자 벽장을 보고 하려니 다른 이들이 보기에 좀 웃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연기에 집중하지 못해서 이 장면이 코미디스럽게 나와 버리면 안 되지 않나. 이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상상을 하면서 연기해야 하니 좀 힘들었다. 의식을 할 때 북도 함께 친다. 처음엔 정박으로 두드리다가 분위기가 고조되면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빨리 쳐야한다. 나는 내가 그렇게 박치인 줄 몰랐다.(웃음)

10. 공포물은 촬영 때 기이한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김남길: 그렇게 해야 영화가 대박난다는 얘길 들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쓰기도 했는데 안 되더라.(웃음) 한 번은 켜둔 여러 개 촛불 중 몇 개가 꺼졌는데 스태프가 특수효과로 쓰인 드라이아이스 연기 때문이라고 해서 좀 아쉬웠다.

방탄소년단의 팬이라는 김남길. “멤버 진이 제가 ‘선덕여왕’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꿈을 키웠다고 하더라고요.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보면 뿌듯해요.”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의 팬이라는 김남길. “멤버 진이 제가 ‘선덕여왕’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꿈을 키웠다고 하더라고요.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보면 뿌듯해요.”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드라마 ‘열혈사제’로 지난해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예상을 했을 법도 한데 소감을 준비해가진 않았나?
김남길: 준비해 가면 너무 티 나지 않나.(웃음) 무대에 올랐을 때 머리가 하얘졌다. 나중에 보니 그 정도 얘기한 것도 다행이다 싶었다.

10. ‘누구누구에게 고맙다’고 나열하는 소감 대신 연기자로서 두려움을 털어놨고, 서로를 알아주는 동료를 만나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하다.
김남길: 무대에 올라가자 바로 앞에 ‘열혈사제’ 동료들이 보였다.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거나 인터뷰를 하는 건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힘을 내서 오늘을 잘 버텨야지, 올해를 잘 버텨야지 그런 마음 말이다. 작품을 할 때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그건 ‘열혈사제’도 ‘클로젯’도 마찬가지였다. 배우들은 자신이 선택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길 원하고 외면 받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내게 용기를 줬던 동료들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 혼자였다면 더 많이 떨었을 것이다.

10. ‘열혈사제’를 성공으로 이끈 만큼 영화 흥행에 대한 욕심도 있겠다.
김남길: 조바심이 난다고 해야 하나. (최근 영화 출연작이 크게 흥행하지 못해) 이번 영화만은 관객들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1000만 영화가 꼭 좋은 영화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1000만 영화를 하고 싶기도 하다. 흥행에 대한 갈증은 없지만 다음 영화를 또 하려면 걱정되긴 한다. 내가 출연한 영화들이 다 부진했다고 평가 받는다면 다음 영화 출연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다. 영화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출연 작품들이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길 바란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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