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태유나 기자]
영화 ‘천문’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한석규./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한석규./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는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얼굴로, 몸짓으로, 말로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게 매력 있어요. 나에 대해, 사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되죠. 연기란 제 인생을 걸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배우 한석규가 연기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천문’은 독자적인 천문과 역법을 갖춰 조선의 하늘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 분)과 그 뜻을 함께했지만 한순간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최민식 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작품.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Faction) 사극이다.

한석규는 SBS ‘뿌리깊은 나무'(2011)에 이어 다시 한 번 세종을 연기했다. 고뇌하는 세종의 예민한 모습을 표현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애민정신 가득한 성군의 모습부터 명나라 간신들을 처단하기 위해 아버지(태종)의 흑룡포를 입는 모습까지 다채로운 세종의 모습을 묵직한 카리스마로 담아냈다. 한석규는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이 죽이지 않는 왕이라면 ‘천문’의 세종은 살리려는 왕”이라고 정의했다.

“세종의 아버지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신하들은 물론 처가 남성들도 가차 없이 죽였어요. 아마도 세종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겁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원경왕후 민씨)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라고 해석했어요. 자신의 가족들을 죽이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세종은 그런 어머니를 어떻게 봐라봤을까. 아마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요? 죽이지 않는 것과 살리는 건 엄청난 차이잖아요.”

영화 ‘천문’ 스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 스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천문’에서는 세종과 장영실을 일반적인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라 애틋하고 애잔한, 신뢰와 애정이 묻어나는 관계로 담아냈다. 세종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영실을 아끼고, 장영실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준 세종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은 로맨스 영화를 보는 듯 따스하다. 한석규는 “세종은 왜 장영실을 좋아했을까.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나눈 첫 대화가 뭐였을까 궁금했다”며 “생각해보니 좋아할 수밖에 없겠더라. 나를 좋아하는데 재능도 있고 말도 잘 통한다. 그런데 어찌 안 좋아하겠나. 마치 나와 최민식 형의 관계를 보는 기분”이라고 미소 지었다.

영화 ‘쉬리’ 이후 20년 만에 한 작품에서 재회한 한석규와 최민식.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인 두 사람은 MBC 주말극 ‘서울의 달’과 영화 ‘넘버3′(1997) 등에서 호흡을 맞췄다. 한석규는 “눈빛만으로도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이”라며 “(최민식) 형은 남들은 재미없어 하는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는 사람이다. 진짜로 눈이 반짝반짝 하다. 연기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노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바보 같은 놀이를 자주 해요. 대학 때는 1000만원이 생기면 어디다 쓸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했죠. ‘서울의 달’을 찍을 때는 1억이 생기면 뭐할지에 대해 토론도 했어요. 그 당시에는 돈이 있으면 재밌을 줄 알았나 봐요. 하하. 이런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에게 했다면 이상하게 보지 않았을까요?”

한석규는 “너는 지는 꽃이 아니라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라는 신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한석규는 “너는 지는 꽃이 아니라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라는 신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최민식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봤다는 한석규는 “최민식 형이 ‘나에게 연기란?’이라는 질문에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대답 했더라”며 “그 의미가 뭔지 정확하게 알겠더라. 나 역시 연기를 위해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나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에게 보여주는 게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배우의 꿈을 갖게 된 당시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고 엄청난 감동을 느꼈어요. ‘바로 저거다’ 싶었죠. 날 울게 만들고 화나게 하고 눈물이 쏟아지고 분노를 느끼게 했거든요. 그게 제가 처음 느낀 예술적 체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 느낌이 지금도 연기를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고요.”

어느덧 데뷔 30년차인 배우 한석규. 그는 술자리에서 선배 신구의 꾸지람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고백했다. 한석규는 “신구 선생님 앞에서 ‘저희들은 꽃으로 치면 지고 있다’고 말했다가 크게 혼났다”며 “신구 선생님이 ‘너희가 무슨 지고 있는 꽃이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니 기분이 남다르더라”고 껄껄 웃었다.

태유나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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