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컷./ 사진제공=좋은하늘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컷./ 사진제공=좋은하늘
상곤(천정명 분)은 한 지방대학의 체대생이다. 복싱 유망주로 미래가 밝다. 어느 날 갑자기 그를 찾아온 선배가 “너 건달 해볼래?”라고 제안한다. 상곤은 기다렸다는 듯이 “형이 계속 신뢰할 수 있는 동생이 되겠다. 내가 아는 동생들도 합류시켜도 되겠느냐”고 말한다.

상곤과 동생들, 그리고 그들을 건달의 세계로 이끈 선배가 함께한 술자리 도중,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었다. 상곤과 동생들은 젊은 혈기에 호기롭게 주먹을 날린다. 그 사이 선배란 사람은 슬쩍 자리를 뜬다. 상곤은 그 자리에서 그가 비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시절의 폭력 사태는 상곤의 아버지 도움으로 일단락됐다. 아버지는 모 기업 회장이다. 다시 말해 상곤은 금수저다. 그런 그가 뭐가 부족해 건달의 길로 들어선 걸까. 훗날 상곤은 그 비열한 선배를 처단하고, 동생들을 이끄는 보스가 된다.

영화는 남 부러울 것 없는 상곤이 건달이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송 감독은 얼마 전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2000년대 초반의 조직폭력배 이야기인데, 당시 조폭은 의리가 있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정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천정명도 개봉 전 인터뷰에서 “상곤은 마냥 건달의 세계를 동경해서 갔다기보다 형, 동생들과의 의리 때문에 따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의리’ 때문에 건달이 됐다고 치자. 남자들 사이에 아무리 ‘의리’가 중요하다지만 상곤에게 부모와 연인은 뒷전이다. 오로지 동생들이 먼저다. ‘의리’의 강도가 얼마나 지나친지 보다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여럿 있다.
[TEN 리뷰] '얼굴없는 보스' 잘 나갔던 건달의 인생 다큐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컷./ 사진제공=(주)좋은하늘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컷./ 사진제공=(주)좋은하늘
건달이 된 이후 상곤이 걸어가는 길은 마치 휴먼 다큐를 보는 듯하다. ‘의리’를 위해 사업을 포기하기도 하고, 동생들을 위해서라면 감옥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직폭력배인데도 “연장은 절대 챙기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나 부드럽고 인간적인 보스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인간극장’이나 ‘사람이 좋다’ 같은 프로그램을 본 뒤에 느껴지는 감동이나 공감은 없다.

이 영화의 기획자에 따르면 실제 조직에 몸담았던 건달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었다. 무려 8년 10개월의 제작 기간에 걸쳐 완성했단다. 또한 TV에서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접한 이후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감독은 “10대 청소년들에게 ‘헛된 꿈’을 꾸지 말라는 기획 의도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정명도 “상곤은 의리와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간적인 면모를 봐 주면 좋겠다. 어떻게 하다 보니 건달의 세계로 빠졌지만 화려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쉽게 돈 벌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는 것 등을 보면서 10대들이 쉽게 유혹에 빠진다고 하더라. 그런 것들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컷./ 사진제공=(주)좋은하늘
영화 ‘얼굴없는 보스’ 스틸컷./ 사진제공=(주)좋은하늘
결말로만 보면 분명 ‘건달 세계’의 끝은 비극적이다. 15세 관람가인 이 영화를 보는 청소년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과연 제작진의 말대로 ‘조폭 우상화’가 담기진 않았을까. 싸움 잘하고 동생들 잘 챙겨서 칭송받고, 고급 세단을 끌고 다니고, 어려운 지인들에게 돈 봉투도 손쉽게 건네는 그 세계의 단면만 보게 되진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저 나이 많은 아저씨가 “옛날에 잘 나갔다”며 주먹 좀 쓰던 시절 이야기로 웃어넘길 수 있다면 다행이다.

오는 21일 개봉.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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