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펭귄 ‘뽀로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기 가면 펭귄도 유명해질 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한국에 세계적인 스타 BTS도 있지 않습니까. 스타가 되려면 한국에 가야겠다 싶어 왔습니다.”

남극에서 왔다는 펭귄의 꿈 치고 꽤나 당차고 야무지다. 무려 ‘우주 대스타’가 목표인 이 펭귄의 이름은 ‘펭수’. 지난 4월 첫 방영된 EBS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이다. 210㎝에 달하는 커다란 인형탈을 쓴 펭귄 캐릭터다. “저는 성별이 없어요”라고 말하긴 하지만 남자로 추정되는 배우가 탈을 쓰고 펭수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펭수의 거창한 꿈은 정말 이뤄지고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물론, ‘어른들의 우주 대스타’라 불리며 20~40대로부터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36만명을 넘어섰다. 펭수의 각종 움짤(움직이는 짧은 이미지)과 명언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폭발적인 반응에 출연 요청도 쏟아지고 있다. 펭수는 요즘 각종 채널을 넘나들며 TV와 라디오에 나오고 있다. 단순한 펭귄 캐릭터일뿐인데, 어떻게 어른들의 대스타가 된 것일까.

펭수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캐릭터라고 하면 어린이처럼 마냥 귀엽고 순진무구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런데 펭수가 하는 말들은 이 선을 조금씩 벗어난다. “저는 EBS 소품실에 살고 있어요. 2000평 정도인데요. 소품실 전체가 제 거에요.” 캐릭터가 공간 평수를 이야기하는 묘한 색다름. 또 방송에서 뽀로로 등 다른 캐릭터들과 경기를 했을 때 ‘반칙을 좀 쓰지 않았냐’는 질문엔 이렇게 대답한다. “어허, 글쎄요. 기억이 잘 안납니다.” 순진한 외모에도 왠지 익살스러움과 노련함이 느껴진다.

어른들이 품은 현실 속 판타지도 충족시켜준다. 펭수는 어른들의 현실과 연결된 이야기들을 자주 한다. 그런데 정작 어른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유쾌하게 해낸다. 툭하면 EBS 김명중 사장을 친구처럼 언급하고, ‘사이다 발언’도 쏟아낸다. “위치 이런 거 상관없이 그냥 똑같아야 됩니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똑같아야 하고요.” “잘 쉬는 게 혁신이에요.” 확고한 철학과 분명한 의사 표시. 이를 통해 펭수는 어른들만의 동화를 구현하고 있다.

그 정점은 강렬한 자기애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펭수는 이렇게 답한다. “눈이 크고, 키도 크고, 이름에 ‘수’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그건 바로 접니다. 전 제가 좋아요!”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며 숱하게 좌절하고 아파하는 어른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은 깎아내리게 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생기곤 한다. 그런 어른들에게 펭수의 거침없는 자기 사랑은 이상할 정도로 강한 울림을 준다.

펭수는 온갖 장기를 선보이며 자신감을 마음껏 표출하기도 한다. 랩부터 비트박스, 요들송까지 자유자재로 해낸다. 이전에 없던 재간둥이 캐릭터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도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한다. 뜨거운 인기에 ‘뽀로로를 이긴 것 같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이젠 이기고 지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나만의 싸움. 나 자신과의 싸움.”

펭수의 말을 들으며 함께 웃다보면 문득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떠오른다. 펭수도 어린 왕자처럼 지친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다. 펭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힘든데 힘내라 이것도 참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저는 ‘사랑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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