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사진=트라이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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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 활동한지 어느덧 20년. 세월의 무게는 묵직하지만 그 시간들을 내뱉는 백지영의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가 감돌았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댄스 가수에서 독보적인 감성을 지닌 보컬리스트가 됐고, 한 아이의 엄마가 돼 부모의 심정을 알게 됐고, 새로운 회사에서 또 다른 시작을 하는 등 각종 변화가 찾아왔지만 조급함보다는 여유를 품게 됐다는 백지영이었다.

쌀쌀한 기운을 타고 발라드의 계절 가을이 왔다. 그리고 '발라드의 여왕' 백지영도 3년 만에 새 미니앨범 '레미니센스(Reminiscence)'를 들고 대중 앞에 섰다. "그동안 해외도 다녀오고, 공연도 했고, 각종 행사도 하는 등 나름대로 바쁜 3년을 보냈다"고 말문을 연 그는 "이렇게 오랫동안 신곡을 안 냈는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앨범을 준비하면서 20년 가수 생활 중 가장 긴 시간동안 대중분들께 음악을 선보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정성 들여 준비했다"고 털어놨다.

백지영이 가수로서 걸어온 스무해를 추억하고 회상한다는 의미를 담은 '레미니센스'. 이번 앨범에는 이별의 아픔을 담담하면서도 애절하게 표현한 타이틀곡 '우리가'를 비롯해 '하필 왜', '별거 아닌 가사', '혼잣말이야', '하늘까지 닿았네', '우리가' 인스트루먼트 버전까지 총 6곡이 수록됐다.

백지영은 "앨범 기획을 하면서 대중들이 위로보다는 이별의 '그날'을 떠올릴 수 있는 향기나 향수를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절절하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이 있었으면 해서 '우리가'를 타이틀곡으로 정하게 됐다. '우리가'의 벌스와 엔딩이 따뜻하고 좋다"며 "노래를 들으신 분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한다. 노래가 좋은 선물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백지영 /사진=트라이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백지영 /사진=트라이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레미니센스'를 내기까지 가수가 아닌 인간 백지영에게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백지영은 그 중에서도 딸 하임 양을 품에 안은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그는 "딸이 너무 긍정적인 변화를 줬다. 소중한 존재가 선물로 생기다보니 마음도 따뜻해지고, 일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라며 미소지었다. 백지영은 "나도 이제 워킹맘인데 일과 육아를 잘 조절하면서 일도, 가정도 안정되고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편 정석원과의 사랑의 결실로 얻은 가장 완벽한 결과물이 딸이라며 무한한 애정을 표했다. 행복한 일상이 이별 발라드를 주로 부르는 백지영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백지영은 "무대에 오르는 사람과 그의 인생이 분리될 수는 없지만, 표현하는 측면에서는 나의 생활과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 완벽하게 분리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연예인 백지영으로서의 삶은 내 생활과 분리할 수 없으나 노래하는 백지영은 분리가 돼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딸이라는 변화가 정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처절한 노래라고 해서 완전히 슬픈 느낌만 있지는 않다. 사랑했던 기억도 있고, 다양한 감정들이 한 곡으로 표현되는 거다. 나의 삶을 끌어다 노래하는 편이 아니다보니 사실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감정이 충만한 상태이다 보니 지금처럼 벌스와 엔딩이 따뜻한 걸 선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화는 최근 15년간 몸 담았던 회사 뮤직웍스를 떠나 2006년 '사랑 안해' 활동부터 함께 해온 최동열 매니저가 설립한 회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백지영은 "최동열 대표하고는 햇수로 14년째 일을 같이 하고 있다"면서 "지금쯤이면 이 친구가 대표가 돼 일을 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회사에 들어오는 걸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보다 보낸 시간이 많았다. 가족들은 덮어놓고 내 편이지만 대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나를 컨트롤한다. 결국 또 다른 가족인 셈"이라며 최 대표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백지영 /사진=트라이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백지영 /사진=트라이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렇게 새로운 둥지에 터를 잡고 20주년 기념 앨범을 내게 된 백지영은 "신보를 준비하면서는 회사와 생각이 조금 달랐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20주년을 기다리는 19주년이 더 긴장되고 의미가 있었는데 스태프들은 20주년에 큰 의미를 두고 있더라. 나는 마치 20주년이라는 게 지금까지 해 온 것에 비해 할 일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그냥 넘기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는 백지영은 "어찌 보면 20주년을 겪는 게 스스로를 더 다지고 변화시키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의미를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주년을 맞은 지금, 데뷔 때와 10주년 때의 백지영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를 묻자 그는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기계 같았다. 당시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오빠의 다이어리를 보면 하루에 스케줄을 13개까지도 했더라. 생각이라고는 담을 수 없는 일정이었다. 그때는 체력도, 성대도 단련됐던 기간이었던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어 "데뷔와 10주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안 좋은 것도, 좋은 것도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니 성숙해지는 단계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현재의 백지영에게는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일을 대하는 자세에서 조급함이나 욕심이 많이 없어졌다"고 말문을 연 그는 "10주년 때는 댄스곡이나 공연 등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라도 완벽하게 하고 싶다.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건 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고집하기 보다는 관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어떻게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때에 시간을 맞추려고 잡아당겨도 보고 밀어도 냈다. 고난을 견디는 시간 안에 나만의 또 다른 고난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흘러가는 그 시간 위에 잠깐 앉아서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조금 더 중요한 것들을 넓게 본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고, 그 시간을 영위하는 것에서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안 좋은 시간의 무게는 비슷하지만 데미지는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비수같이 꽂혔던 것들이 이제는 스며들면서도 빨리 증발시켜 버릴 수 있게 됐다. 그게 좋은 변화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주년을 맞을 거라 생각도 못하고 바로 눈 앞에 있는 일들을 보면서 달렸죠. 앨범을 내고 보니 그 생각이 너무 교만했더라고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20주년이 온 게 아니죠. 거만했고, 교만했던 저를 반성하면서 시간에 대한 감사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는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저희 회사의 비전이기도 한 정신도 몸도 건강한 상태로 말이에요."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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