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 insight] 영화제 공략 강화하는 넷플릭스
지난 3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최고 화제작 중 하나는 ‘더 킹:헨리 5세’(사진)다. 온라인 예매는 티켓 오픈 1분만에 매진됐다. 이 작품은 동영상스트리밍(OTT) 업체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다. 넷플릭스 작품이 영화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소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갈라 프리젠테이션은 거장 감독의 신작이나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을 선보이는 섹션이다. 넷플릭스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티모시 샬라메를 주연으로 내세워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는 이 작품과 함께 ‘두 교황’ ‘결혼 이야기’ ‘내 몸이 사라졌다’ 등 총 4편을 BIFF에 출품했다.

넷플릭스가 세계 주요 영화제를 적극 공략하고 나섰다. 이제 주요 영화제에서 넷플릭스의 작품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넷플릭스 영화를 받아들이는 영화제도 늘어나고 있다.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선 칸 영화제를 제외한 베니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가 경쟁, 비경쟁 부문에서 모두 넷플릭스 출품을 허용하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배급되는 영화가 기존 영화계 규칙에 균열을 내고 빠르게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2015년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을 시작으로 영화 제작을 대폭 늘리고 있다. 그해 2편, 2016년엔 20편, 2017년엔 40편, 2018년엔 71편으로 급증했다. 올 상반기에 자체 제작한 전체 영화 수는 170여 편에 달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 등 드라마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가 굳이 영화 제작을 늘리고, 영화제에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뭘까. 영화는 다른 영상들과 달리 대중성과 예술성도 함께 갖추고 있어, 핵심 영상콘텐츠로 꼽힌다. 넷플릭스가 영향력을 강화하고 권위를 획득하는 데는 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최고 권위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영화제에서 넷플릭스는 계속 배척당해 왔다. 극장을 통해 배급하는 전통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OTT를 통해서만 선보이거나 OTT에 먼저 공개한 후 극장에서 개봉한다. 아직 넷플릭스 작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칸 영화제도 이런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칸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프랑스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참가할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넷플릭스 작품은 칸 영화제에 비경쟁 부문에만 출품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넷플릭스는 경쟁, 비경쟁 모든 부문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올해도 넷플릭스 작품은 출품되지 않았다.

이와 달리 베니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는 넷플릭스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특히 가장 오래된 영화제인 베니스영화제는 가장 먼저 변화를 선택했다. 지난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에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주며 권위를 적극 부여하기도 했다. 영화제를 통해 권위를 얻고자 하는 넷플릭스, 이런 넷플릭스를 통해 권위를 되찾으려는 베니스영화제의 이해관계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칸 영화제에 계속 밀렸던 베니스영화제는 넷플릭스를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영화계 관계자들이 북적이는 영화제로 거듭났으며, 대중들도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넷플릭스 작품을 둘러싸고 영화계에선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인디영화 투자·배급사 ‘시네틱 미디어’의 로스 프레머 이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넷플릭스는 ‘우리에겐 돈이 있으니까, 상을 받고 신뢰를 얻자’고 한다. 이는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짓이다.” 반면 넷플릭스 영화 ‘엘리사와 마르셀라’를 찍은 이사벨 코이제트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돈이 없어 10년 동안 제작비를 찾아다니며 고군분투한 영화 제작자일 뿐이다. 영화의 전통은 영화관에서의 상영이 아니라 작가를 존중하는 것 아니냐.”

과연 이 논란의 끝엔 어떤 결론이 기다리고 있을까. 거대 자본의 힘에 맞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켜온 규칙이 이어질지, 아니면 넷플릭스라는 거대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게 될지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