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위기의 30대 여자들’ 스틸. /사진제공=EBS 국제다큐영화제
영화 ‘위기의 30대 여자들’ 스틸. /사진제공=EBS 국제다큐영화제
지난달 열린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2019)’는 어김없이 좋은 작품들이 많이 선보였다. 어느 해보다 다양한 주제들을 다뤄서 풍성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영화들이 눈에 띄었다. 독자들 중에 혹 ‘여성영화’라는 말 자체가 성숙한 표현이 아니라고 여길 분도 있을지 모르나 아무튼 그 말밖에 딱히 떠오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 구(舊) 소련의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고초를 겪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굴라크수용소의 여인들’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이 떠올랐고, 이란 첩첩산중에서 홀로 살아가는 80세 할머니의 인생을 다룬 ‘비러브드’에서는 강인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되는 인권 침해를 다룬 ‘침묵하는 여성을 위하여’는 철저하게 짓밟히는 여성을 발견하기에 충분했다. 모두 다 한 번쯤 평을 해보고픈 영화들이다.

이제 소개하려는 ‘위기의 30대 여자들(Leftover Women)'(힐라 메달리아·쇼쉬 슐람 감독)은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두 감독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지만 오늘날 중국의 현실을 자세하게 조명한다. 물론 중국인 감독이 자신의 나라를 관찰하는 다큐멘터리가 보다 자연스러울지 모르나 타인의 눈으로 본 중국도 나름 신선했다. 마치 극영화를 보는 듯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서 감독의 제작의도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흔히 다큐멘터리는 가능한 한 감독의 선입견을 제거하는 게 원칙이라지만 오히려 기승전결이 분명해 관객이 달리 샛길로 빠질 염려가 없었다.

영화 ‘위기의 30대 여자들’ 스틸. /사진제공=EBS 국제다큐영화제
영화 ‘위기의 30대 여자들’ 스틸. /사진제공=EBS 국제다큐영화제
영화에는 세 여성이 나온다. 34세의 변호사 화메이, 28세의 방송국 PD 쉬민, 36세의 대학교수 가이치다. 굳이 이들의 나이를 밝히는 이유는 국가에서 강제로 이 여성들의 조건을 규정해뒀기 때문이다. 1979년, 중국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치 못해 한 가정 한 자녀 원칙을 국책으로 삼았고 오늘날 남성이 여성보다 3000만 명이 많은 상태가 됐다. 물론 남아선호 사상 덕분이었다. 이런 기현상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판단한 정부는 결혼적령기 여성들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결혼을 당연시하는 전통 사고방식까지 더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에서 정해놓은 결혼 적령, 곧 20대 중반을 넘긴 여성들을 혐오하는 풍조가 발생했다. 이른바 ‘잉여여성’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잉여여성’들의 목소리도 한 번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화메이가 결혼중개업체를 찾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미인도 아니고, 나이도 많고, 아기도 원치 않는 주제에, 집안일을 같이 하고 자신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남자를 찾는 여성….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결혼할 생각이 있기는 한가요?” 결혼이 다급해진 쉬민 역시 대규모 맞선 보기 행사에 나가 신랑감을 구한다. 다행히 적당한 사람을 만나 사귀기 시작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어차피 조건을 보고 시작한 만남이라 약간의 장애물만 등장해도 쉽게 관계가 무너져서다. 가이치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살았던 까닭에 제 나이에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에 자기보다 어린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에 이른다. 불타는 사랑 때문에? 적어도 이는 영화에서 발견되는 용어는 아니다.

‘잉여여성’과 관련해 감독이 발견한 핵심 문제는 자녀세대와 부모세대 사이에 놓인 사고방식의 차이다. 이를 묘사하기 위해 화메이의 고향에 찾아가 그녀의 가족을 만나고 쉬민과 어머니의 불꽃 튀는 대화를 녹화하고 가이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를 등장시킨다. 아마 서구 여성의 눈에는 무척 신기한 모습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왜 중국의 젊은 여성들을 제목소리를 떳떳하게 내지 못하는 것일까?

영화 ‘위기의 30대 여자들’ 스틸. /사진제공=EBS 국제다큐영화제
영화 ‘위기의 30대 여자들’ 스틸. /사진제공=EBS 국제다큐영화제
중국에는 거대한 결혼시장이 형성돼 있다. 거기에 보면 어머니들이 아들의 약력이 적힌 종이판을 공원에 들고나가 신부감을 찾고, 대규모 중매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지며, 수많은 결혼중개 업체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결혼에 관심이 많은 나라일 것이다. 감독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운 모습이었으리라. 그러니 중국의 오래된 전통과 자신을 찾아나가려는 용감한 젊은 여성들과, 아시아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모녀관계와, 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각을 교차로 확인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보기 바란다. 꽤 흥미 있는 영화감상이 될 것이다.

필자는 ‘위기의 30대 여자들’을 보면서 중국의 전통사회에 살금살금 금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우리에게는 이미 십수 년 전에 시작된 균열이다. 요즘 한국의 결혼 적령 젊은이들 셋 중 하나가 비혼(非婚)으로 접어들었고 출산율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으며 자녀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정책까지 적극적으로 변화했다. 아무튼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마저 듣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기성세대는 한탄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도대체 글러먹었어, 우리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는 필자가 젊었을 때도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용감한 중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낸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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